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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재, “화살 세리머니로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

2989 구단뉴스 2012-09-10 1970

올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는 드라마를 써내며 많은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시즌 초반 최하위의 성적과 재정난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며 부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6월을 기점으로 거침 없는 상승세를 타며 기적 같은 그룹A(1~8위 상위리그) 진출을 눈앞에 뒀다. 비록 제주와의 30라운드에서 무승부로 그룹A 문턱에서 주저 앉았지만, 인천이 보여준 행보는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강렬하게 남을 정도였다.

인천의 상승세에 가속 페달을 밟아준 이가 있다. 한 때 ‘포스트 박주영’ 또는 ‘연고전의 영웅’이라 불리며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으나 프로 입성 이후 꽃을 피우지 못해 꺾이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제주에서 친정팀 인천에 돌아 온 이후 10경기 5골 1도움을 기록해 막판 연승을 이끌며 새로운 영웅이 된 남준재(24)가 주인공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축구 인생을 써왔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화살 세리머니로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는 경상도 사나이 남준재와 짧지만 강렬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맹활약, 운이 좋았다”
인터뷰 당시 만나본 남준재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밝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룹A 탈락의 충격과 아쉬움이 클 수 있었지만, 시간이 있었던 만큼 떨쳐 버린 것 같았다.

- 요즘 컨디션과 몸 상태는 어떤가?
지난 제주전 이후 5일간의 휴가를 받았다. 그 동안 몸 상태가 안 좋았기에 치료받으면서 오랫동안 푹 쉬었다. 3일부터 운동하면서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은 괜찮다.

- 최근 맹활약으로 팬들의 관심이 늘었는데?
사실은 못 느끼고 있다. 언론에서 나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것은 안다. 팬들께서 어떻게 좋아해 주시는지는 몸으로 못 느끼고 있다.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 최근 인천에서 생활은 어떤지?
인천에 다시 돌아와서 큰 불편함 없이 편하게 지내고 있다. 분위기 자체가 익숙해서 괜찮다

- 지난 7월 이후 10경기에서 5골 1도움 기록했는데, 예상은 했는지?
일단은 개인적으로 공격포인트는 생각 하지 않았다. 욕심을 내려 하지 않았고, 팀의 상위리그 진출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을 뿐 이다. 마음을 비우고 하니까 운도 많이 따랐던 것 같다.

- 최근 활약의 큰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2년간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포기할 생각도 했었다. 누구나 좋은 일, 나쁜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고, 경기 영상을 많이 보면서 실전에서 어떻게 할지 준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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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내에서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 누렸다”
남준재는 연세대 재학시절 학교 내에서 아이돌 못지 않은 스타였다. 특히 그는 라이벌인 고려대를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였다. 대학 2학년이었던 2008년 네 번의 연고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넣으며 일명 ‘연고전의 영웅’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 연세대 시절에는 잘 나갔던 공격수로 평가 받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대학 시절까지 정상에 머물러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어떤 선수랑 붙어도 자신감이 있었다. 프로에 와서도 개인적인 자만심이 있었다. 머릿속에는 자만심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다. 최근 2년 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자만심이 있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 특히 연고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넣어, 영웅으로 칭송 받았다. 연고전에 강했던 이유와 그 때 당시 경기에서 느꼈던 투지 어땠는지?
대학 입학하기 전인 2006년에 고등학생 신분으로 친구 3명과 함께 서울에서 있었던 정기전을 보러 갔었다. 그 당시에 본 정기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국가대표 경기도 직접 봤지만, 정기전의 열기에 더 놀랐다. 신입생 때 그 경기에서 뛰게 된다면 큰 영광으로 생각했다. 2007년에 연세대에 입학한 후 많은 준비를 하고, 정기전에 나섰다. 그 당시 전반전만 뛰고 교체됐는데, 긴장과 심리적인 압박이 심해서 제대로 경기를 하지 못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교체되었고, 후반전에 경기를 구경해야 하는데 너무 창피한 나머지 라커룸에서 경기 끝날 때까지 울었다. 그 날 이후 일기를 쓰면서 ‘1년 뒤에 보자’라고 항상 적었다. 고려대와 시합하면 강한 마음 가짐이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했고 골도 잘 넣었던 것 같다.

- 연고전에서의 저력이 최근 전북, 수원과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골에도 도움이 됐는가?
최근 경기에서 골 욕심은 부리지 않았고, 팀이 이기는 것을 원했다. 강팀이라고 해서 주눅들지 않으려 했다. 강팀이라도 우리와는 백지 한 장 차이다. 어떻게 자신감을 가지느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결정 된다. 프로에서는 영원한 승자와 강자가 없기에 강한 각오를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더 잘 할 수 있었다.

- 당시 교내에서 인기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 때 당시 학교 내에서 인기는 아이돌 그룹 못지 않았다. 정기전 축제가 끝나면 정말 학교에서 제대로 걸어 다니기 힘들었을 정도다.

- 대학 3학년 때 프로로 직행했다. 졸업 하기 전에 결심한 이유는?
2학년 때 프로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정기전이 중요하기에 남아달라고 부탁해서 1년을 더 있었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는 4년까지 머물기를 바랐지만, 이 시기에 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학교는 나를 잡아야 했고, 나는 나가고 싶었기에 힘든 시기였다. 그 때 당시 동료였던 김다솔(포항), 박종우(부산), 이현웅(대전)과 같이 많은 고민을 했다. 분명 나중에 학교 졸업장이 없으면 후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과감히 도전하게 됐다.

“부진할 때 단점 개선보다 반항심이 컸다”
남준재는 2010시즌 ‘연고전의 영웅’을 뒤로하고 인천 유니폼을 입으며, K리그에 첫 발을 디뎠다. 첫 시즌 3골 5도움으로 큰 족적은 남기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보여줬기에 다음 시즌에도 희망을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전남으로 트레이드 이후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큰 쓴 맛을 보게 됐다.

- 첫 시즌을 인천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느낌은?
그 때 당시에는 도전이고, 꿈의 시작이었는데, 인천에서 1순위로 뽑아서 영광이었다. 정말 1년 내내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게 프로라는 것을 느꼈다. 행복한 1년을 보냈다. 트레이드 당해서 너무 아쉬웠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때 당시 추억은 잊을 수 없을 듯 하다.

-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과 당시 친구였던 유병수(알 힐랄)가 많이 도와줬다고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큰 힘이 됐는지?
페트코비치 감독님은 풍부한 경험을 가졌고, 고국(세르비아)에서 유명한 분이셨다. 어린 선수들을 잘 알고 이해 해줬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선수들을 칭찬해주셨다. 또한 경기가 안 풀려도 젊고 무궁한 가능성이 있기에 주위에서 하는 말을 신경 쓰지 말라고 조언하셨다. 유병수는 어렸을 때부터 편하게 지낸 친구였고, 플레이뿐 만 아니라 생활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 하지만 시즌 도중 페트코비치 감독 사임 이후 팀 내 입지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라고 말을 하기에는 거짓말이다. 신인으로써 1년에 감독이 세 번 바뀌어서 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혼란을 겪었다. 팀 스타일이 세 번씩 바뀐 것과 마찬가지라서 적응하기 힘들었다. 당시 구단이 재정난을 겪었고, 새로운 감독님 스타일을 맞춰야 하니까 선수들이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 2011년 전남으로 이적했는데?
2010시즌을 마치고 훈련장 가는 길에 트레이드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음 날 짐을 싸서 광양으로 내려갔다. 첫 시즌을 보내며 프로무대에 적응했고, 다음 시즌 인천에서의 활약을 기대했었다. (트레이드 소식 듣고) 많이 황당하고 힘들었지만, 겪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경기에 자주 못 뛰고 다시 제주로 다시 이적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느 부분에서 잘 안 풀렸는지?
전남에서의 6개월 동안 의욕이 넘쳤고, 내 자신을 너무 믿었다. 이적할 당시 정해성 감독님이 갓 전남에 부임하셨을 때였고, 나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다. 감독님의 눈에 들기 위해서 추구하는 스타일을 맞추려 노력했었다. 2011시즌 시작하고 3경기까지 괜찮았었다. 하지만 5경기를 넘어가면서 의욕이 앞서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나쁜 버릇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독님의 연이은 지적이 있었고, 정신 차리라는 면에서 나를 2군으로 보내셨다. 그때는 내가 왜 2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내 단점을 고치려 하는 것보다 반항심이 컸다. 결국 내 자신을 컨트롤 하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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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즐기려 했다”
남준재는 전남과 제주를 거쳐 지난 7월 장원석(제주)과의 맞트레이드로 1년 7개월 여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대학 시절 때와 달리 떨어질 때로 떨어진 상태에서 인천으로 복귀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복귀한 지 얼마 안된 7월 15일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빠울로의 결승골을 도왔다. 이후 5골을 넣으며 인천의 최다 연승 타이기록인 5연승을 이끌며 예전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 결국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7월에 군대 갈려고 했었다. 김봉길 감독님께서 불러주신 순간 마지막이라 여겼고, ‘벼랑 끝에 와서 썩은 동아줄 잡는 곳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지난 13년 동안 축구를 하면서 억압된 경기를 했었는데,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것보다 축구를 즐기고 싶었다. 어차피 팬들이 뭐라 하던 간에 축구를 재미있게 하자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 복귀할 때 첫 시즌 인천과 지금의 인천의 다른 점이 있었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첫 시즌과 지금 크게 변화된 면은 없었다. 다른 팀에 있으면서 언론을 통해 인천의 소식을 접하면서 2년 동안 모든 게 변화되고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7월에 다시 돌아 왔을 때 예전에 느꼈던 끈끈한 인천으로 다시 돌아온 듯 했다. 힘든 시간을 겪으면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간의 관계, 조직력, 내부적으로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쁘지 않았었다.

- 복귀 후 예상보다 빨리 주전을 꿰찼다. 한교원, 문상윤, 최종환 등 기존 선수들과 경쟁을 피할 수 없었을 텐데?
경쟁에 있어서 누구한테 진다는 생각은 없었다. 비록 나는 좋은 선수는 아니지만, 경쟁에서 밀린 다는 생각을 가지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한 때 경쟁에서 밀려봤기에 지금은 큰 부담이 없다. 기회를 잘 잡으면 이겨 낼 수 있다고 본다.

- 김봉길 감독이 어떤 면에서 많이 도움을 주는가?
상당히 자신감을 많이 주신다. 인천에 다시 올 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던 데로 하면 된다’고하셨다. 또한 ‘자신감이 있으면 못할 게 없다’고 힘을 실어주신다. 지금은 감독님을 믿고 하다 보면 잘 되는 것 같다. 감독님은 나한테 아버지 같은 분이라서 사랑한다.(웃음)

- 현재 인천의 플레이와 자신의 장점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인천의 팀 전체 색깔이 분명하고, 감독님 의도대로 딱딱 맞아 떨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감독님은 아기자기한 패스를 바탕으로 한 축구를 좋아한다. 짧은 패스와 나만의 파워풀한 플레이, 적극적인 패스와 드리블로 인한 공격적인 스타일이 잘 맞는 것 같다. (설)기현 형이 볼을 받아주고, (한)교원이가 뒤 공간을 침투해서 골을 넣는 장면도 잘 맞아가는 것 같다.

- 설기현의 존재감이 상승세에 큰 도움이 되는지?
나의 플레이에서 반을 차지 한다고 본다. 경기 내적이나 외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 최근 자신감 있는 플레이는 기현이 형의 많은 조언과 경기장에서 움직임이 있었기에가능했다. 같이 공을 차는 것 만으로 영광이며 나의 축구인생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설기현이) 5, 6 년 더 뛰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내가 은퇴할 때까지 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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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세레머니,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인천은 거침없는 상승세로 그룹A 진출을 눈앞에 뒀지만, 제주와의 30라운드에서 무승부로 아쉽게도 그룹B로 밀려났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끝은 아니기에 실망을 하지 않았다. 남준재 역시 개인과 팀 성적이 아닌 더 많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 5연승 후 마지막 제주와의 경기에서 감정이 남달랐을 텐데?
사실은 게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상대팀이라 느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니까 제주에서 팀 훈련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경기를 하면서 놀랐다. 잊은 줄 알았는데 미묘한 감정도 있더라. 박경훈 감독님과 선수들, 팬들 모두 친근하니까 저 팀에서 훈련하는 느낌이 들어 순간 혼란스러웠다.

- 결국 그룹A진출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해서 아쉬움이 더욱 컸을 텐데?
정말 5연승을 하면서 선수들과 구단 직원들이 한 마음이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같은 날에 열린 경남, 대구의 경기 결과는 제주전 끝날 때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충분히 승리 할 거라 생각했는데 비겨서 허탈했다. 더욱 아쉬웠던 것은 승점 차이가 모자랐으면 인정했지만, 골 득실 차의 미묘한 차이로 못 가서 아쉽게 느꼈다. 버스 안에서 다들 잘했다고 웃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니었다. 대부분 선수들은 팬들에게 미안함을 보였다. 오랜만에 거의 가득 찬 숭의 구장(인천축구전용구장)을 봤고, 못한 경기가 아니었기에 아쉬워했던 것 같다.

- 제주와의 경기 후 탈락의 충격 정도는 어땠는지?
사실은 크지 않았다. 올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어떻게든 회복이 필요하다. 지금은 9위지만 열심히 해서 그룹A팀들보다 더 많은 승점을 얻으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상위리그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한 때 꼴찌 했던 팀이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최근 골 행진과 함께 화살 세리머니가 돋보이는데, 의미는 무엇인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이다. 골 넣으면 무슨 세리머니를 할지 고민했었다. 처음에 골을 넣으면 감독님께 안기는 세레머니를 해드리고 싶었다. 내가 골 넣을 때 뒤지고 있거나 앞서가도 서포터석과 멀리 떨어져 있어 쉽지 않았다.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세리머니를 하고 싶었다. 어쩔 때는 내가 화살을 쏘면 팬들이 ‘악하고 쓰러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스테보(수원)가 활을 쏘기만 하지 아무 반응이 없다. 내 세리머니로 서포터석을 팬들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화살 세리머니에는 더 많은 의미가 있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 이제는 인천의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인천에서 욕심이 클 것 같다. 어떤 선수로 남고 싶은가?
일단이라는 영웅이라는 불러주시는 자체가 영광이다. 나중에 은퇴하더라도 좋은 선수로 기억할 수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 인천을 지지하는 모든 분들이 ‘인천이라면 남준재라는 좋은 선수가 있었지’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하고 싶다. 나도 시간되면 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할 것이다. 팬들을 경기장으로 끌어 모을 수 있는 열정적인 선수로 거듭나고 싶다.

인터풋볼 한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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