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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맨]이규로 “인천만을 위해, 나는 축구하리라!”

479 UTD기자단 뉴스 UTD기자 김유미 2012-07-31 1363

DF / No. 29 / 1988년 8월 20일 / 180cm, 68kg
옥과초-광양중-광양제철고
2007년~2009년 전남 드래곤즈
2010년~2011년 FC서울
2012년 인천유나이티드
2010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프로통산/75경기 출전 7골 3도움
인천통산/5경기 출전 1도움


부상으로 인해 9개월 동안 그라운드에 나설 수가 없었다. 축구를 그만둬야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13년 동안 해온 것이 축구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6월30일 다시 그라운드에 나섰다. 그토록 기다리던 푸른 잔디를 밟았다.

 

인천만을 위해!

2012시즌 그는 인천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바로 그라운드에 나설 수 없었다. 무릎부상으로 인해 수술까지 감행했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제가 인천으로 간다는 말이 계속 나왔어요. 근데 재활중인 선수를 누가 데려가나 설마하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기사가 났더라고요." 보통 경기에 필요함에 바로 투입가능한 선수를 영입하는데 그는 조금은 다른 경우였다. 프로 첫 스승이었던 허정무감독의 부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허정무감독이 인천에 있는 동안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감독님이 저의 플레이를 기억하시고 다시 불러주셨는데 감독님이 계실 때 못 뛰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는 20라운드가 진행된 현재. 인천에서 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재활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그런 그는 기다려주는 팬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인천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데 부상으로 출전하지도 못하는 선수가 와서 돈만 축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는 반년이 되도록 새로운 팀에서 재활을 했다. 그동안 기다려준 팬들에게 이제는 보답할 때라고 한다. 이제는 인천만을 위해 그라운드의 무법자로 변신할 때다.

 

 

우상, 할아버지
프로 첫 데뷔부터 3년 동안 전남드래곤즈에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을 받고 FC서울로 이적, 대표팀까지 뽑히며 그의 축구인생은 순탄한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FC서울로 이적 후, 그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남에서 줄 곶 주전이었지만 FC서울에서는 2군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프로 입단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그라운드를 달렸던 것 같아요. 그냥 잔디를 밟는 게 마냥 좋았던 시절 같아요."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달렸기 때문에 그는 2군 생활을 한다는 것이 힘들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무릎부상까지 찾아온 것이다. 축구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만둬야하나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그를 붙잡아준 분이 있었다. 바로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던 중,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제가 만약에 축구를 안했더라면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셨을 것 같아요. 손자가 축구 한다는 이유로 저랑 축구를 보다가 안 좋게 되셨어요." 하나밖에 없는 손자였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는 많이 예쁨을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지만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그의 1호 팬이었다. 손자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해주던 할아버지. 이제는 그가 할아버지에게 축구선수로서 계속해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힘들었던 9개월
부상, 수술. 그를 괴롭혔던 것들이다. 처음에는 무릎이 아파서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어 계속 운동을 했다. 결국에는 수술까지 했다. "원래 쉬는 편이 아닌데 수술을 하면서 최고로 많이 쉬었어요. 빨리 공을 차고, 경기에 나가고 싶었지만 목발이 없으면 걷지도 못했었어요." 수술을 하고 재활까지 그는 꼬박 9개월이나 걸렸다. "포토데이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방문했는데 당장이라도 경기를 뛰고 싶은 욕구가 생겼어요. 하지만 그때도 재활중이여서 불가능했었죠."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그에게 9개월이란 암흑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복귀…….
2012년 6월 30일. 드디어 그가 복귀했다. 인천에서의 첫 경기였다. 2012시즌 16라운드 만에 그는 경기를 뛰었다. 축구선수가 공을 차고 경기를 뛰어야지 축구선수다. 드디어 그는 진정한 축구선수로 다시 돌아왔다. "경기를 뛰게 되니 너무 행복했어요. 드디어 제 실력을 인천 팬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저를 택해준 선생님들에게 해가 되지 않으려 정말 열심히 뛰었어요." 자신이 못하면 자신만을 욕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택해준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가기 때문에 더 열심히 그라운드를 달렸다. 그런 그가 인천에서의 두 번째 출전 만에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지난 상주 전에 경기종료직전, 그가 올린 크로스를 설기현이 헤딩으로 처리하여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그날따라 (설)기현이형이 계속 보이더라고요. 초반부터 계속 형한테 하나 맞춰줘야지 하면서 될 것 같으면서 쉽게 풀리지 않더라고요. 근데 경기 종료 직전, 득점해서 너무 좋았어요." 그때 이후로 인천은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그가 복귀하면서 그라운드에 생기를 불어 넣어줬다. 그런 그가 앞으로 인천에서의 활약이 더욱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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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경력 6년차
그는 25살이다. 프로 데뷔는 횟수로 6년차다. 대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를 선택했다. 그는 그때의 선택에 절대 후회없다. "숙소에서 형들이 당구나 이런저런 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저는 못한다 고해요. 그럼 형들이 설마 고졸이냐? 라고 항상 묻더라고요." 대학 4년 동안 축구를 더 배우면서 대학생의 특권까지 누리는 것도 좋지만 그는 그 시간에 프로에 입단하여 실전에 더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택했다. 그 경험으로 인해 그는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같은 또래의 선수들보다 경험이 더 많은 그는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경기적인 것은 물론이고 그 외적인 것들인 팬들에게 대처하는 방법, 상처받지 않는 방법 등 프로선수라면 이겨내야 할 것들을 일러주고 있다.

 
인천의 페이스메이커
그가 인천에 왔을 때 인천이라는 팀은 무척 조용하다고 느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인지 마지못해 끌려 나온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 느낌에 그는 빨리 복귀하여 팀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분위기가 좋아야 플레이도 훨씬 편하게 하고 재밌고 활기차게 공을 차야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수다쟁이로 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로인해 많은 선수들도 더욱더 활기차지면서 분위기가 반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이 맞아 떨어졌다. 소소한 말 한마디라도 웃으면서 건네고 더 많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해 분위기 반전은 성공 한 것이다. 바로 프로 6년차의 노련함이다. "제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후배들도 보고 따라하죠." 그는 팀 분위기는 물론이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줘야 후배의 후배까지도 배울 수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남을 위할 수 있는 사람, 남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사람, 보답할 수 있는 사람, 감사함을 아는 사람. 이것이 바로 인간이자 축구선수 이규로이다. 그는 이제 고작 인천에서 다섯 경기 출전하였지만 인천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그의 남은 축구선수의 생활이 더욱더 궁금해진다. 반년동안 그를 기다려준 것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그를 아끼며 관심으로 그를 지켜봐주자.


 
 
글 = 김유미 UTD기자(ubonger@nate.com)
사진 = 이상훈 UTD기자(mukang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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