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당찬 윤평국…“모두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뛸 것”

548 UTD기자단 뉴스 UTD기자 김동환 2013-03-24 2040
user image

이름 : 윤평국
생년월일 : 1992.02.08
키 : 189cm
몸무게 : 85kg
포지션 : GK
등번호 : 41
입단년도 : 2013
출신학교 : 신곡초-보인중-보인고-인천대


아직도 팬즈데이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그의 춤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자기는 그런 선수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도무지 알 수 없다. 무표정하지만 할 말은 다한다. 어디로 튈지 감 잡을 수 없는 윤평국 선수와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한다.


****아래 내용은 윤평국 선수의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전개하였습니다.****

‘팽이’ 윤평국이 골키퍼를 선택한 이유

사실 처음부터 골키퍼로 뛴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화를 처음 신었는데 1달 정도 왼쪽 윙에서 뛰었다. 그런데 동계훈련을 하던 도중 평소 골키퍼를 하던 형이 다쳐 내가 대신 투입됐다. 마침 감독님께서도 권유하셨고 공을 막는 것이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네”하고 냉큼 골키퍼 장갑을 꼈다.

감독님께서 내 플레이에 만족하셨던 것 같다. 슬쩍 내가 있는 쪽으로 오시더니 용돈으로 3000원을 주고 가셨다. 휴게소에 들르면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하시면서. 골키퍼만의 매력도 그때쯤 느꼈다.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공격수의 골도 중요하지만 골키퍼의 선방 능력도 굉장히 중요하다. 책임감도 필요한 자리고. 상대편의 슈팅을 막았을 때 다른 사람은 모르는 희열이 느껴진다. 평소 동호회에서 골키퍼를 맡으신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윙으로 뛰던 때를 생각한 적은 있다. 그러나 내가 골키퍼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골키퍼를 선택했기에 지금 내가 이 위치에 와 있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선방의 희열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골키퍼는 하늘이 내려 준 기회다.


삭발의 추억, 아 괜히 도망갔어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학교가 어느 대회를 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 못해서 일찍 탈락했다. 코치님께서 화가 나셨는지 그때 우리보고 “모두 머리를 밀어라”며 혼내셨다. 삭발? 왜? 나는 너무 이해가 안됐다. 축구를 못한다고 머리를 밀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기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머리를 밀기로 한 날을 하루 앞두고 우리는 도망가기로 계획했다. 그 때 동기가 16명이었는데 성실한 1명 빼고 불성실한(?) 15명이 단체로 도망쳤다. 아, 물론 머리 깎으러 간다고 말은 했다. 머리 깎을 시간에 도망을 나온 거다. 그 때 우리 학교(보인고)가 송파구에 있는데 되도록 멀리 갈까 하는 마음에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때마침 여름이라 바다를 본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잊고 뛰어들었다.

그날 밤 난리가 났다. 부모님이랑 학교에서 전화가 계속 왔다. 결국 우리는 고등학생이라는 한계(?)에 부딪쳐 4일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혼난 것은 당연하고 머리도 모두 밀었다. 아, 어차피 머리 깎을 거면 왜 도망갔던 걸까.


골키퍼로서 손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내 오른쪽 손등에 큰 상처가 하나 있다. 17세 대표팀에 있었던 당시 주말에도 고등학교 리그가 진행됐다. 이에 리그를 치른 뒤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져서 학교로 돌아갔다. 그 때 언남고등학교와 경기가 있었다. 우리 학교와 언남고 사이에는 항상 묘한 기류가 흘렀다.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쟁관계였다.

그런데 언남고와의 시합에서 내 손이 골절됐다. 골키퍼에게 손은 아주 중요한데 부상을 입은 거다. 정말 힘들었다. 부상은 이미 그렇게 된 거니 어쩔 수 없고 일단 빨리 나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와 가족의 위로가 힘이 됐고, 스스로 계속해서 격려했다. 부상 투혼으로 언남고와의 시합에서는 이겼지만 대표팀에 다시 들어가지는 못했다.

난 손톱을 잘 깎지 않는다. 이런 걸 징크스라고 하던가.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 나를 가르치셨던 코치님께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코치님께서 골키퍼로 뛰던 시절 어떤 대회 결승전에서 PK 상황을 맞닥뜨렸다고 하셨다. 어찌어찌해서 상대편 선수가 찬 공의 방향은 읽었는데 몸을 날린 순간에 자기 팔이 짧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공이 자기 손톱부분을 맞고 골대를 맞더니 공이 튕겨나가 우승했다고 하시더라. 믿기지는 않는데 막상 이야기 들으니 손톱을 안 쳐다볼 수가 없더라. 징크스라고 하기에는 웃기지만 나는 손톱을 잘 깎지 않는다. 그렇다고 더럽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user image

김현태 코치님께 가르침을 받다니 영광스러운 일

김현태 코치님은 한국축구에서 인정받는 분이시다. 2002 월드컵 대표팀에도 계셨고 수많은 골키퍼를 가르치셨다. 그런 분 밑에서 가르침을 받다니 영광스러운 일이다. 가르치실 때는 무섭지만 항상 다정다감하게 선수들을 대해주시는 좋은 분이다.

나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더 노력한다. 게다가 코치님께서는 안정성을 추구하신다. 골키퍼에게 안정성은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기 때문에 배우기 위해 몇 배 더 힘을 낸다. 코치님께서는 낙법도 많이 가르치신다. 골키퍼는 공중볼 다툼이 많아 착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게 낙법에 많이 집중한다. 낙법하니까 생각나는 게 예전에 태권도를 배운 적 있다. 얼마 동안이냐고? 딱 하루.


“너 몇 골 먹었냐”

인천 유나이티드에 들어왔을 때 감독님께서 내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다. 순간 움찔했다. 대학 시절에 골을 적게 먹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이 안 나서 조금 줄여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감독님께서 내 기록을 이미 아시고 물어보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괌 전지훈련 때 “너 살 쪘다”는 말을 좀 들었다. 그래서 괌 전훈 이후부터 계속 체중관리를 하고 있다. 난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굉장히 말라서 안 먹은 약이 없다. 개구리, 개소주, 장어, 붕어 등 전국의 모든 약은 다 먹은 것 같다. 모두 부모님 덕분이다.

지난해 드래프트에 약 600명이 신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틈을 뚫고 인천에 들어왔으니 정말 영광이다. 잘난 것 없는 나를 선택해 주셨으니 더욱 노력해야겠다. 난 성격이 긍정적이어서 ‘안 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드래프트 때도 그랬다. 반드시 된다고 생각했다. 축구든 어떤 일이든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긍정적 태도는 타고 났나보다.

내가 뛰던 학교(인천대)는 송도신도시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훈련 끝나고 자주 저녁을 먹으러 신도시로 나왔다. 한 번은 밥 먹고 친구들이랑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카페에서 (김)남일 선배님, (이)규로형, (설)기현 선배님을 봤다. 남일 선배님의 아들(서우)도 같이 있었다. 유명 선수를 본 것이 신기해서 일부러 옆 테이블에 앉아서 힐끔거리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 때는 내가 인천에 올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선배님들을 보면 매일이 꿈같다.


내게 ‘혁’ 선배들의 존재란

(권)정혁 선배님과 (조)수혁이형은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신다. 코치님께서 나를 가르치실 때, 뒤에서 내 플레이를 봤다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는지 말씀 해주신다. 사실 정혁 선배님은 큰 산과도 같은 존재라서 나중에 그와 비슷하게 되고자 몇 배 더 노력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팬즈데이 때 내가 했던 말이 정혁 선배님께 실례가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뒤로 많은 분들이 염려(?)하시는 다른 일은 없었다.


대학시절 내 눈에 비쳤던 인천이라는 팀은

솔직히 말하면 정말 단단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짠물 수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모든 선수들이 절실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는 19경기 무패라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았나. 초반에 인천이 위기에 빠졌을 때, 사실 ‘이러다 강등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 적 있다. 나도 인천에서 계속 생활 해서 그런지 감정이입을 많이 한 것 같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뭐나면

자기관리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학도 단체이기는 하지만 프로와 다르다. 지금 나는 인천 엠블럼을 가슴에 달고 있다. 그래서 내가 더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먹어도 항상 프로선수로서 행동해야 한다.

난 시간이 나면 주로 영화를 본다. 예전에는 많이 봤는데 요즘에는 못 본지 오래됐다. 최근에 본 게 ‘화차’였으니 시간이 꽤 됐다. 요즘은 경제적 요건이 조금 나아지다 보니 이런저런 유혹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돈이 없다’는 최면을 건다. 조금 웃길지 모르지만 돈이 없다고 생각하니 엉뚱한 데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대학시절 게임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나는 뭔가에 빠지면 잘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모두 그만뒀다. 가끔 팬들께서 내게 ‘SNS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신다. 나도 처음에는 트위터가 뭔지 궁금해서 시작했고, 페이스북도 꽤 재밌어서 한 적은 있다. 그런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자꾸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보게 된다. 그러다보니 축구에 집중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팬들께는 죄송하지만 SNS를 그만하기로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트위터(@sexyguyyoon)를 만들었을 때 나는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때 난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팬즈데이에서 춤을 췄을 때와 같다고 할까.



user image

첫 월급의 그 순간 ‘두근두근’

난 다른 선수들처럼 축구를 시작할 때 반대에 부딪친 적이 없다. 부모님께서도 “하고 싶은 것이라면 해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누나도 그렇게 말했다. 보통 선수들이 축구를 시작할 때 부모님 반대에 부딪친 것에 비하면 난 정말 행운아다. 그렇게 나를 응원해 준 가족 덕분에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첫 월급 받았을 때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용돈만 빼고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 살짝 털어놓자면 부모님께 돈을 드리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월급날 아버지께서 내게 전화하셨다. “그동안 할머니, 엄마, 아빠, 누나가 너 뒷바라지 하면서 되게 고생했다”고 살짝 돌려 말씀하시더라. 그 때 눈치를 챘다. 이어 아버지께서는 “누나도 고등학교 때 너에게 용돈도 많이 주고 그랬으니 첫 월급을 어떻게 쓸지 잘 생각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난 아버지 말씀을 듣고 ‘선물’을 사드리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현금’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선물을 사겠다는 마음을 살짝 내비쳤더니 싫어하시더라(웃음). 그래서 첫 월급은 모두 가족에게 드렸다.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에게…

먼저 매력적이지 않은데도 나를 좋아해주는 여자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가끔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어보신다. 팬즈데이 때도 말씀드렸다시피 ‘다비치 강민경’이 이상형이다. 그런데 내 여자 친구가 강민경보다 훨씬 예쁘다. 정말이다.

대학시절부터 저를 응원해주시는 팬에게도 정말 감사드린다. 목포 전지훈련이 끝날 때쯤 내 생일이었는데 그 분께서 목포까지 오셔서 케이크와 선크림을 주고 가셨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축구화 끈을 조일 수밖에 없다. 여자 친구가 팬들의 선물을 가끔 질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모두 나를 응원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야”라고 말하며 달랜다.

사정이 있어서 축구를 그만두고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던 대학교 친구에게도 항상 고맙다. 일본 J리그에 간 (이)기제(시미즈 S펄스)와 프랑스에 있는 (김)경중(SM 캉)이와도 가끔 연락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


언젠가는 1번을 달자고!

지금 난 등이 무겁다(41번을 단 것을 비유). 대학교 1학년 때는 선배들이 계셔서 21번을 달았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1번을 달았다. 등번호에 대해 집착하거나 특별한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좋아하는 숫자는 있다. 바로 4다. 내가 4를 좋아한다고 하면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오늘 인터뷰했던 기자분께서 의아해하신 것도 이해한다.

4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난 반대다. 7처럼 4도 행운의 숫자가 될 수 있다. 오늘 인터뷰 하셨던 기자분께서 “윤평국 선수 등번호가 41번인데 그러면 4와 1을 합친 것인가요”라고 말씀하셔서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41번에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석현이형과 대명이에게 하고싶은 말

(이)석현이 형이 “왜 윤평국 선수는 키도 크고 잘생겼냐”고 질문하셨다는데, 나도 잘 모르겠다. 주위 분들께서도 잘생겼다고 말씀해주시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기분은 좋다. 그런데 나는 (김)남일 선배님이 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멋있고 카리스마가 있다.

(이)대명이가 이번에도 나를 웃겼다. “윤평국에게 이대명이란”이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답하기 전에 일단 대명이가 어떤 선수인지부터 말해야 할 것 같다. 대명이는 정말 재밌다. 지난해 송년회에서 봤을 때는 조용하고 소심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말이 많다. 귀찮을 정도로 많다. 첫 이미지와 완전 180도 다른 선수다. 질문에 대한 답? 앞에서 말한 것 같다.

석현이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치지 말고 앞으로도 잘 했으면 좋겠다. 형이 정말 자랑스럽다. 신인왕을 목표로 하는데 꼭 탔으면 좋겠다. 얼굴보고 눈 마주치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럽다. 대명이도 정말 활발하고 재밌고 착하다. 그런데 가끔 분위기 봐가면서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팬들과 가족에게

항상 경기장에 오셔서 선수들에게 힘을 넣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선수들에게 변함없는 사랑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경기장에서 힘을 내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또 지금까지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신 가족에게도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옛날에 제가 프로라는 목표를 위해 뛰었다면 이제부터는 제가 가족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뛰겠습니다.

글=김동환 UTD기자(@KIMCHARITO)
사진=남궁경상 UTD기자(boriwool@hanmail.net), 이상훈 UTD기자(mukang1@nate.com)

댓글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다음 UTD기자단 뉴스

윤평국이 배식 봉사에서 혼난 이유

UTD기자 김동환 2013-03-24 2154

IUFC MATCH

NEXT HOME MATCH

인천

V

02월 28일 (토) 14:00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서울

NEXT MATCH

인천

V

02월 28일(토) 14:00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서울

LAST MATCH

인천

0:1

11월 23일(일) 14:00

충북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