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교원
FW / No.27 / 1990.06.15. / 181cm 72kg
미덕중 - 충주상고 - 조선이공대
2011년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
리그통산 46경기 7골 3도움
2002년 월드컵은 나에게 원대한 꿈을 키워준 대회.
여느 축구선수와는 다르게 친구를 따라가서 축구부에 가입했다던지, 감독의 눈에 띄어서 축구부에 가입된 경우가 아니었던 한교원. "초등학교시절에 학교운동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축구부원들을 보고 그저 단순히 너무 멋있어보여서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어요" 그렇게 시작한 축구는 초등학교 6학년때 우리나라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의 영향으로 지금의 같은팀이었던 2002대표팀 주축이던 김남일, 설기현 선수등을 보면서 자랐다."당시에 월드컵은 저에겐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한 엄청난 대회였어요. 대표팀멤버 한명한명이 저의 우상들이셨구요. 말그대로 정말 멋있어 보였죠." 이로 인해 한교원은 축구선수로 무조건 성공하자는 목표가 생기면서 더 큰 다짐을 하게 되었다.
축구를 그만둘뻔했던 고교시절, 그리고 어쩔수 없던 조선이공대로의 진학.
그랬던 한교원은 충주상고 1학년시절 방황(?)아닌 방황을 하게 되었다. 같은 학교소속선수들 몇몇이 타지역으로 혹은 수도권으로 떠나게 되면서, 본인 역시 소위 말하는 명문지역팀에서 뛰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를 생각해보면 제자신이 되게 어렸죠. 생각도 짧았고..그로 인해서 1학년때 무려 6개월을 쉬었어요. 그때 축구를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어요." 그런 그를 잡아준건 역시나 부모님과 충주상고 감독님이었다. 그래도 고향팀이고 충분히 뛸수 있는 여건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다시 한번 시작해보자고 설득하였고, 한교원은 이내 본인의 고집(?)을 접고 다시 팀으로 복귀하였다. 이후 고교생활을 무난히 지냈고, 진학의 갈림길에서 조선대로의 입학을 앞두었다. 하지만 한교원에게 돌아온 대답은 조선대가 아닌 2년제 전문대인 조선이공대에서 2년을 뛰고 편입을 해서 조선대에 합류하라는 통보뿐이었다. 당시 조선대의 TO가 남지 않아 그를 뽑을 자리가 없었다는게 학교측의 답변. 한교원은 울며겨자먹기로 조선이공대로 진학을 하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미래일은 아무도 모르는 일. 조선이공대에서 조선대로 편입을 할수 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이었다. 그저 현실이 막막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이곳에서나마 내실력을 펼쳐보자 마음을 먹었다.
2011시즌 인천의 드래프트 5순위 한교원선택. "솔직히 인천에 뽑힐줄 몰랐다."
조선이공대소속으로 2010년 U리그에서 20경기에 18골을 넣으면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당시에 한교원은 광주지역의 조선이공대소속이었고, 2011년부터 창단되는 광주FC로 드래프트 선택을 받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한 말들이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오고갔다. 하지만 드래프트 당일날 본인의 이름을 불러준 팀은 광주가 아닌 '인천유나이티드'였다고 한다. "솔직히 제가 인천으로 갈줄을 몰랐어요. 말 나온건 광주FC였는데 어쨋든 그 당시 순간에는 프로에 입단했다는 자체가 너무너무 기뻤어요." 꿈에 그리던 프로에 왔지만 역시나 녹록치 않았다. 하지만 역시나 한교원의 플레이가 맘에 들었는지 인천에 입단 후 R리그 2경기를 뛴 후 바로 1군경기에 투입이 되었다. 케이리그의 세계는 정말 강했다. 그동안 아마추어축구와는 템포가 달랐다. "학창시절에는 그래도 볼을 잡으면 여유가 있었거든요.하지만 프로에서는 공을 잡자마자 2,3명의 선수들이 바로 달려들어요. 거기에 케이리그가 공수전환이 엄청 빨라요. 애 좀 먹었죠" 프로세계의 매서운 경기력에 정신없이 플레이했던 그에게 빠른 기간인 리그 8라운드 전북전에 데뷔골을 넣었다. "진짜 너무 기뻤어요. 이후에 '나도 할수 있구나. 통하는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겼죠." 그리고 전반기에 대단한 활약을 펼치면서, 2011년 8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대표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당시 구단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올림픽대표에 뽑혔다고.. 진짜 미.친.듯.이 좋았어요." 이후 올대에 합류하여 합숙기간을 가졌다. 결과적으로는 이후에 올대에 이름을 올리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또래들에게 본인이 가지지 못한 능력 등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고 한다. 여담으로 "홍명보감독님 진짜 멋있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시절 우상이었던 2002년 월드컵 영웅중 최고의 선배를 눈앞에서 접한것은 엄청난 영광이었죠."라며 그 당시의 감회를 밝혔다.
환상적이라 느껴지는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그동안 작년까지 10여년간 홈구장으로 썼던 '문학월드컵경기장'을 떠나 새집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긴 인천. 한교원도 새로운 홈구장을 보며 감탄을 하였다고 했다. "말그대로 정말 멋있어요. 이런 멋진구장에서 우리가 뛰는구나..라고 감격했죠. 전용구장이라 관중들 바로 앞에서 플레이를 보여줄수 있다는 생각에 매우 들떴죠." 정말 눈과 마음이 호강하는 홈구장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경기날에 경기전 몸을 풀잖아요. 그중에 슛팅연습을 할때, 빗나가는 슛이 관중석으로 바로 날아가버리잖아요? 그럼 팬들이 공에 맞을까봐 되게 걱정이 많아요. 그렇다고 살살할수 없는게 경기전에 슛팅감각을 확실히 익혀서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렇게 팬들을 걱정하면서도 내심 "근데 막상 슛팅이 골대를 빗나가도 팬분들이 정말 잘피하시드라구요. 막 펀칭도 하시고(웃음) 불안불안하고 위험하긴 하지만 이것 역시 우리 홈구장인 전용구장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라며 홈구장에 대한 무한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매경기 꽉채우고 싶은 포부도 밝힌 한교원이었다.
불안함과 기대감, 감동이 있던 2012시즌.
본인은 막상 시즌을 시작했을때 재활군에 있었다. 장기부상으로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고, 오직 부상치유와 재활훈련에만 힘썼다. 동계훈련기간에 기사로 접한 설기현, 김남일의 영입과 더불어 문상윤, 이호균등의 영입으로 공격진의 스쿼드 역시 쟁쟁한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위기의식을 느꼈다는 한교원. 당장 본인의 입지를 생각하면 불안함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팀으로 봤을때는 정말 좋은 스쿼드를 보유하여 우리 인천도 강팀이 될 수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그 중 "(설)기현형이 영입이 되고 뛰는것을 보니 정말 클래스가 다르다는것을 느꼈어요. 한국나이로 33~34살이 되셨는데도 아직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막말로 정말 인천에 (설)기현이형만한 공격수는 없어요. 최전방에서 자리를 잡고 볼을 다따내잖아요. 여유있게 볼을 소유한다는 것. 그게 팀으로 봤을때는 정말 엄청난 것이거든요. 바로 공격빌드업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인천에는 없어선 안될 선수죠.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5월달 한교원이 부상에서 복귀 후 인천은 전반기는 16위로 마쳤지만, 절치부심하여 후반기에는 대단한 드라마를 쓰며 막바지 울산, 전북 등 강호마저 원정에서 잡으며 5연승을 하는 등 엄청나게 승승장구 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는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축구하는게 행복했고, 개인적으로 막판 5연승이라는 구단 신기록을 세웠을때, 역사를 이뤄낸 한 일원이라는게 너무나도 뿌듯했어요." 정말 감동적이었다는 올시즌. 아직 시즌이 다 끝난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의 순간순간들은 절대 잊을수 없다고 말했다.
잊을수 없는 7월 15일 서울전, 이제는 서울킬러?!
올시즌 아니 본인의 프로선수생활 커리어에서 절대 빼놓을수 없는 서울. 그는 유난히 서울에 강했다. 거기에 비오는날 서울전은 특히나. 작년 상암원정에서 1골과 더불어 이번시즌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의 환상적인 2골 등 서울만 만나면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7월 15일 서울전을 앞두고 팀내 몇몇 형들이 한교원에게 "비가오면 너의 날이다. 거기에 서울전이니 넌 오늘 한건 할거야" 라면서 팀내 형들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징크스(?)에 대해 언급을 해주었다. 그리곤 우연이라고 하기엔 기가막힐 정도로 서울을 상대로 2골을 몰아넣었다. 서울과의 경기를 본인의 대활약으로 3:2승리를 이끌고 사상 첫 경기MVP와 이주의 베스트11으로 뽑혔다. 당시의 2번째골은 본인도 "볼을 소유하고 정신없이 이리저리 접으면서 슛팅을 햇는데, 그렇게 잘맞을줄은 몰랐어요. 그 슛팅이 골문으로 완전 시원하게 빨려들어가는거에요. 미친듯이 기뻤죠. 프로에서 뛰면서 가장 미칠듯한 짜릿함이 있었던 골이었어요" 당시 경기초반 데얀의 반칙으로 치아가 하나 나가버린 한교원. 그 이야기를 하면서 멋쩍게 "원래 임플란트를 해놓은 치아였는데 그게 딱 빠져버린거에요. 뭐 그래도 이날 대단한 활약을 펼치며 골도 넣고 한거 보면, 빠진 치아랑 골이랑 바꾼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라며 긍정적인 대답을 한 당찬 선수였다. 지금의 치아는 임시로 메꾼거고 11월쯤에 다시 치아를 치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한교원은 "우리 인천이랑 서울이 더욱 더 치열한 더비를 형성했으면 좋겠어요. '경인더비'라고 다들 그러시잖아요? 저 개인적으로도 정말 이더비를 엄청나게 이슈화 시키고 싶어요. 두팀이 만나서 매경기 만원관중을 이루는 장면도 연출해보고 싶구요." 라며 내심 케이리그 소속선수로써 리그흥행에도 관심이 지대함을 엿보이게 해주었다.
아쉬움이 컸던 마지막 30라운드 제주전, 그리고 하위스플릿.
"(장)원석이형이 너무 얄밉더라구요. 그날 너무 잘막아서요." 우리는 프로선수이기때문에 승부는 승부. 살살해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큼 제주전은 너무너무 간절했고 급했다. 이날 전반전이 끝나고 광주가 경남을 1:0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선수단 모두들 전반 경남의 결과가 너무 궁금했지만 일부러 경기결과를 물어보지 않고 바로 후반을 뛰었다고 한다. 결과는 모르지만 어찌됐던 우리 스스로 골을 만들어서 승리하길 바랬다. 하지만 당시에 모두들 마음이 너무 급했다고 밝힌 한교원. 결과적으로 너무나도 아쉬운 9위로 30라운드를 마감하며 하위스필릿으로 9월달을 시작하게 되었다. "A그룹으로 올라갔다면 상위팀들과의 경기를 통해서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릴수 있었고, 경험을 쌓을수 있었을거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된이상 소위 말하는 B조의 깡패라도 되어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죠." 김봉길 감독님이 30라운드 종료 후 요즘 가장 주문하는 점은 '9위를 사수하자'라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하신다고 한다. 한교원 본인도 "아쉬움은 잊고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의 목표의식을 같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무장하려고 노력중이다" 라며 앞으로 남은 시즌경기들도 최선을 다해서 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팀내 별명은 "아드레날린 저글링", 소속팀 형들과의 재미있는 숙소생활.
재미있는 소재였다. 선수들 사이에 불리는 본인의 별명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쌩뚱맞은 '아드레날린 저글링, 스팀팩먹은 저글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저글링은 게임'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유닛의 이름이다. 민첩함이 뛰어나고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는 캐릭터인 '저글링'이 팀내 선수들이 보기에는 딱 한교원이 그래보인다해서 장난스레 지어주었다고 한다. 이 외에 밝힌 선수들의 별명중 안재곤의 '만수동 마스체라노', 신동혁의 '이토타워 나니', 구본상의 "제2의 진공 본상(김남일의 진공청소기에서 청소기만 뺀)", 정혁의 '혁니에스타', 박준태의 '박메시', 설기현의 '설바우도' 등등의 재미있는 별명들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현재 생활하는 숙소생활도 너무 재미있다고 밝힌 한교원은 "현재 룸메이트는 (정)인환이형이랑 쓰고 있어요. 작년에는 (김)재웅형이었구요. 다들 같이 지내는게 너무 재미있어요." 취미생활로는 보통 8명정도가 모여서 PC게임 '스타크래프트' 4:4단체전을 한다고 한다. "이 게임은 (이)윤표형이 정말 잘해요. 그래서 다들 편나누기할때 전쟁이죠. 편나누기로 '이쪽으로 이적시키네 마네' 하는 등 되게 웃겨요. 그리고 뭘하든 내기(게임비, 밥값등등)이 걸려있으니 게임내내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에요. 지면 절대 안되요. 뭘하든 승부욕이 장난이 아니죠." 라며 취미생활로 게임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작년에는 당구도 많이 쳤다며 "다들 말로는 국가대표급이에요. 근데 막상 쳐보면 비등비등하죠(웃음)."
앞으로의 목표는 리그 득점왕! 그 이후에는..
"입단했을때 팀의 (유)병수형이 2010시즌에 득점왕을 했잖아요? 인천에 와서 (유)병수형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 너무 잘하고 대단해보이는 거에요."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 역시 케이리그에서 득점왕을 하는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공격포지션에 있기때문에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거잖아요. 저는 확실히 득점욕심이 있는 선수에요. 공격찬스가 왔을때 더욱 집중하려하고 평소에도 훈련뿐 아니라 이미지트레이닝으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골찬스가 왔을때 최대한 많은 득점을 올려 당당하게 득점왕을 이뤄내고 싶다"고 밝힌 한교원. "저는 아직 부족한점이 많은 선수지만, 노력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다보면 그 길은 열릴거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득점왕은 꼭 해보고 싶어요" 그 이후에는 자연스레 국가대표의 꿈도 꾸고 있는 당찬 인천의 한교원. "(정)인환이형이 국가대표에 발탁되는것을 보고 선수단 전체도 '아 우리도 할수있구나!' 라는 자신감과 목표의식이 생겼어요. 축구선수 모두의 꿈 아니겠어요? 저도 인천에서 노력해여 국가대표선수가 되는것이 꿈이에요" 당찬 포부를 말하며 진지하게 자신의 소신을 말하였다.
만약 축구를 안했다면? 한편 미래에는 지도자가 꿈.
현재 축구를 안하고 있었으면 무엇을 하고 있을것 같냐는 질문에 "아마 '펜'이 짧아서 대학도 못갔을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지금 나이대라면 아마 현재 군대에 있었겠죠?" 라며 정말 현실적인 대답을 해주었다. 한편, 20년후의 본인은 무엇을 하고 있을것 같냐는 물음에 "아마도 감독을 하고 있을것 같아요. 관심도 있구요."라며 추후 축구인생은 지도자로 꿈을 정했다는 한교원. 이야기 도중 P급라이센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확실히 쉬운 자격증은 아닌것 같아요. 단계가 올라갈수록 모든걸 영어로 해야하고, 공부할게 엄청 많을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선수생활 이후 미래의 또다른 꿈을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에 '한교원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어 한팀의 수장으로 팀을 이끄는 모습을 기대해보자.
언제나 고마운 인천팬들의 응원에 힘을 받아 최선을 다해 뛰려고 노력한다는 한교원. 가장 열정적인 인천의 팬들을 위해서 인천의 영광과 언젠가 이룰수 있다고 굳게 믿는 케이리그 우승을 향해, 죽을때까지 뛰어보겠다며 그 당찬 각오를 밝혔다.
[기타 에피소드 말말말]
EP1. "(구)본상이형이 진짜 엄청 미친듯이 뛰어다녀요. 그래서 '개심장'으로 불려요."
- 구본상의 또다른 별명은 '개심장'으로 선수들 사이에서 소위 훈련때나 경기때나 뛰는모습을 보면, 마치 미친개마냥 엄청나게 활발하게 뛰어 다닌다해서 붙여준 별명. 이 외 체력이 구단선수중에 최고일거라고 혀를 내둘렀다.
EP2. "아마 (신)동혁이형이 가장 빠를걸요? 진짜 장난아니에요."
- 선수별 능력중 구단내에서 기록을 재보진 않았지만, 보기엔 신동혁이 가장 빠를거라며.
EP3. "아마 조선대갔으면 오히려 경기도 못뛰었을거에요."
- 당시 입학하지 못했던 조선대에는 같은포지션내에 경쟁자들이 너무나도 쟁쟁했다며.
EP4. "(서울의)아디선수가 힘이 그렇게 좋아요. 진짜 고생많이했어요."
- 케이리그를 뛰면서 가장 힘들었던 선수를 한명 꼽자면이란 질문에.
EP5. "(경기중)체력이 떨어질때 솔직히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힘들다고 교체해달라 말하면 그냥 축구 그만 둬야죠.(웃음)"
- 팀내 최고참인 김남일, 설기현도 그나이대에 엄청한 활동량과 체력을 보여주는데, 23살인 본인이 그렇게 징징대면 축구그만둬야한다며.
EP6. "번즈때문에 영어울렁증이 많이 가셨어요. 그렇다고 잘하는건 아니지만요.."
- 시즌초반 부상으로 번즈와 같이 재활훈련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서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적어졌다며.
EP7. "내가 넣은골인가 싶더라구요.(웃음) 골영상 3번은 돌려봤던거 같아요."
- 서울전 환상적인 2번째골을 넣고 기분이 좋아서 이후에 골영상을 따로 3번이나 돌려봤다며.
EP8. "저희 전남이랑해서 지면 클나요."
- 김봉길감독님이 그어떤팀보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팀이라며. 보통 선수,감독들은 전 소속팀과의 대결에는 승부욕이 더욱 올라탄다며.
EP9. "토튼햄이요. 왜냐면 가레스베일이랑 뛰어보고 싶어요. 진짜 빠르잖아요.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요."
- 해외리그진출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지만, 그래도 가고싶은팀이 있다면 토튼햄이라며.
/글 = 진우복 UTD기자단 (wlsdnqhr@hanmail.net)
사진 = 이상훈 UTD기자단 (mukang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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