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DF No.30
1990.8.15
184cm/80Kg
조봉초-둔촌중-언남고-연세대
2013 인천유나이티드 입단 (드래프트3순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은 스물네 살 김경민, 그가 이렇게 프로 선수가 되기까지는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 되어 있었다. 힘들 때 마다 자기를 다스리는 마인드컨트롤의 대가 김경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인천유나이티드에 드래프트 3순위로 입단하게 되었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 인천에 입단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렸는데 현실이 되어서 좋았어요. 그리고 연세대 재학 중에 인천 선수들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경기장이 마치 영국 프리미어리그 경기장 같았어요. 그 때 이곳에서 내가 선수로서 서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대학 친구인 신철이(부천FC, 김신철 선수) 덕분에도 많이 관심을 가졌었어요. 인천이 작년에 19연승을 했었잖아요. 그때 인천이 서울, 울산, 전북과의 경기에서 3연승을 했었잖아요. 그때 신철이랑 밥 사는 내기를 하기도 했었죠.(웃음) 비록 졌지만요. 인천의 무시무시한 저력을 이제는 직접 와서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 [Goeun Park님의 질문] 그렇다면 김경민선수에게 인천축구전용구장은 어떤 존재인가요?
= 인천이라는 팀에 가고 싶게 만든 존재에요. 한마디로 말하면 첫눈에 반한 존재!
- 그렇다면 축구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 저는 축구를 늦게 시작한 편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육상부 소속이었다가 6학년 때 축구부 감독님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죠. 본격적으로 시작한건 중학교 때에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던 만큼 부족한 것도 많아서 두 세배나 더 노력했어야 했었어요.
- 그러면 축구부 감독님의 권유로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의 포지션인 수비수를 맡았었나요?
= 처음부터 수비수는 아니었어요. 지금처럼 중앙수비가 되기 전에 처음에는 윙을 맡아 골을 넣기도 했었어요. 그 이후에는 미드필더로서 어시스트도 했었죠. 고등학교 선배님인 유병수선수와 함께 투톱자리에 서있기도 했었어요. 그 이후에야 중앙수비수가 되었어요. 알고 보니 감독님께서 저를 중앙수비수를 시키려고 일부러 유병수선수와 함께 공격수를 시킨 거였어요. 직접 그 자리에서 뛰어보며 상대 선수가 어떻게 중앙 수비를 하는지 지켜보라는 뜻이었죠.
- 상대의 입장에서 뛰어봐서 그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겠네요. 아무래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그들의 실력을 따라가기 힘이 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냈었나요?
= 제 스스로 생각해도 축구를 너무 못해서, 내 길이 아닌 것만 같아 감독님께 찾아가 못하겠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때 예전에 코치님이나 감독님들이 했던 얘기들이 생각났어요. “예전에 나는 남들 잘 때 운동하고 그랬어.”라는 말이요. 그래서 저는 그 말대로 실천에 옮겼어요. 정말 남들이 잘 때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기본기 연습을 했죠. 이것이 쭉 이어져서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에도 계속 운동을 했었어요. 그때 동기 중에 지금은 강원FC의 선수인 이창용선수가 있는데, 항상 제가 밤에 나와서 운동을 하면, 그 맞은편에는 창용이가 있었어요.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한거죠. 그 덕분에 서로 자극도 되고, 함께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결과 17세 대표 팀에 뽑히기도 했었어요.
- 열심히 노력한 결과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네요. 그렇다면 수비수로서 자신의 플레이의 장단점을 꼽아보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제 장점은 헤딩력이랑, 몸싸움 그리고 팀의 수비라인을 이끄는 점을 꼽을 수 있어요. 위치선정 면에서는 아직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평상시에 (이)윤표형과, (안)재준이형에게 자주 물어봐요. 전지훈련 때나, 리그 중에나 이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면, 형들이 잘 얘기해 주세요. 그리고 초반에 경기에 나가지 못해 힘들었을 때 형들이 “아직은 네가 어리니깐,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셔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 지금까지 선수로 생활하면서 이런저런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나요?
= 힘들었을 때는 그동안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들께 도움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게임이 잘 안 풀리고 힘들었을 때 중학교 때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그때 해주신 말씀이 “프로는 한경기를 위해 1년 동안 몸 관리를 한다. 그 한 경기 한 경기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열심히 하다보면 기회가 주어질 거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리고 또 “인생이 네 순리대로 풀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니. 힘든 일이 있어야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몇 배로 더 행복하다.”고 말씀해 주셨죠. 그리고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는 “신은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네가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들은 지금까지도 항상 힘들 때 마다 되새기고 있는 말들이에요. 그리고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힘들었을 때는, 나 자신을 되돌아봤어요. 지금 이렇게 잘 되어서 2002년 월드컵 때 봤던 김남일, 설기현, 이천수 선수와 함께 공을 차고 있는데, 그리고 그들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지내게 되었는데 나태해질 수 있겠냐면서요.
- [이주희님의 질문] 연세대 때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어떻게 달라졌고, 인천에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 마음가짐은 항상 같아요. 사실 인천 처음 와서 시작했을 때, 훈련을 잘 못 따라갔었어요. 뭘 해도 못 따라가는 것만 같아서 의욕도 떨어지고, 몸 상태도 안 좋아졌었죠. 지금은 다시 정신을 차렸어요. 다시 운동하면서, 당장을 보며 조급해 하지 말고, 멀리 봐야 갰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경민 선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 같아요. 힘들 때는 선생님께 조언을 얻으며 그 슬럼프를 탈출하려 노력했던 것 처럼요. 그렇다면 반대로 휴식 때는 뭐하면서 보내나요?
= 주로 동료들과 함께 놀아요. 제 또래 친구들이 많아요. 그중에서도 룸메이트인 교원이랑, 본상이, 상윤이와 함께 자주 놀아요. 상윤이랑 둘이서 영화 보러 가기도 하고요.(웃음) 비오는 날 김치전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당구도 치고 볼링도 쳐요. 그리고 음식 값 내기도 많이 해요. 서로의 카드를 올려놓고, 계산하는 분께서 뽑는 카드로 음식 값을 결제하는 거죠.(웃음)
- 축구선수로서 목표가 있나요?
= 제 버킷리스트가 있어요. 일단은 엔트리에 드는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고 싶어요. 엔트리에 들고, 게임을 뛰고, 더 나아가서는 열심히 훈련해서 국가대표도 되고 싶고, 해외진출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은퇴하고 싶어요. 축구를 하면서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졌거든요.
- [허은지님의 질문] 자신의 인생에서 축구란 무엇인가요?
= 동반자에요. 모든 걸 축구로 연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축구로 모든 걸 배우는 것 같고, 다시 또 모든 것을 축구를 통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 가족들에게는 항상 고마워요. 특히 누나에게요. 제가 운동을 해서 부모님들의 관심이 저에게 많이 쏠렸거든요. 그런데도 누나는 저를 더 챙겨줘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죠. 묵묵히 뒷받침해주시는 아버지와, 항상 다치치 말고 열심히 하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해주시는 어머니도 감사해요. 그리고 인천에서 “김경민”하면 딱 떠오를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고요.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셔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네 순리대로 풀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힘든 일이 있어야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때 몇 배로 더 행복하다.”, “신은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네가 견딜 수 있는지 없는지 테스트하고 있다.” 이 두문 장이 그가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구절이라고 했다. 그와 인터뷰 하면서, 오히려 그동안 내가 그동안 어떻게 해왔는지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를 보면 머지않아 그가 그리던 인천축구전용구장에 그의 이름이 울려 퍼질 날이 머지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글 = 이예지 UTD기자 (lo_ovl@nate.com)
사진 = 남궁경상 UTD기자 (boriw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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