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수 주연-페트코비치 연출, 축구는 신뢰다
스포탈코리아 서호정 기자= 개막 후 일곱 경기 연속 무득점. 2라운드 광주전에서는 페널티킥마저 날려먹었다. 줄어든 자신감마냥 슈팅 숫자도 점점 줄어들었다. 후반에 교체로 들어간 부산전에서는 슈팅 하나 날리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팀은 5연패. 지난 시즌 14골을 터트리며 슈퍼루키 열풍을 일으켰던 인천의 10번 유병수(22)는 지난 7라운드까지 간판 공격수다운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주변에서 걸어오는 위로 문자나 전화에도 답하지 않았다. 2년 차 징크스라며 그의 부진을 꼬집는 기사들이 보기 싫어 신문도 인터넷도 끊었다. 학창 시절 합숙소에서 단 한번도 도망치지 않았던 유병수였지만 이번만큼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그를 불렀다.
“지금 네가 부진하다 해서 출전 명단에서 빼 버리면 너는 자신감을 잃고 선수로서의 생명력까지 잃을 지도 모른다. 골을 넣을 때까지 계속 투입할 것이다. 너 자신을 믿어라.”
세르비아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까지 다녀온 백전노장 페트코비치 감독은 5연패의 위기에 빠졌음에도 즉흥적 감이 아닌 차가운 이성으로 판단하고 분석했다. 유병수의 침묵을 일시적인 문제라고 본 그는 부진에 허덕이는 제자를 오히려 감싸 안았다. 선수에 대한 신뢰마저 걷어낼 때 팀의 진정한 위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8라운드 포항전을 이틀 앞두고 유병수는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5연패에 빠진 팀 부진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페트코비치 감독이 경질될 수도 있다는 보도였다. 자신을 비롯한 인천 선수단은 의심의 여지 없이 감독을 믿고 있었지만 5연패라는 최악의 상황이 그런 시각도 나오게 만든 것이었다. 유병수는 ‘공격수인 내 잘못이다. 어떻게든 포항전에서 연패를 끊어야 된다’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의 의지와 집념은 18일 포항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31분 결실을 봤다. 25미터 넘는 먼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을 오른발로 강하게 때렸다. 힘과 속도가 실린 공은 휘어져나가 포항의 골망을 흔들었다. 지난 시즌 종종 보여준 무회전 슈팅으로 ‘월미도 호날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정작 프리킥 골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유병수는 그렇게 고대했던 2010시즌의 첫 골을 프로 데뷔 후 첫 프리킥 골로 터트렸다.
자신의 공이 상대의 골망을 흔드는 것을 확인한 유병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니폼 엠블럼을 물고 달리는 세레모니를 펼치며 벤치로 향했다. 그가 향한 곳에는 페트코비치 감독이 있었다. 부진에 허덕이던 자신을 신뢰로 안아준 페트코비치 감독을 이번에는 유병수가 안았다. 노감독과 젊은 공격수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따뜻한 체온으로 대화하며 오랜 시간 포옹했다. 유병수는 감독을 안고는 등을 두드렸다. 이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그 동안 나만큼 감독님도 힘드셨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다른 지도자였다면 진작에 나를 명단에서 뺐을 것이다. 하지만 페트코비치 감독님은 끝까지 나를 믿어줬다. 그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해다. 아마 감독님도 내 골을 기뻐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벤치에 가서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도 감독님을 안고 등을 두드렸다.”
그토록 원했던 마수걸이 골이 터지자 이후 유병수는 세 골이나 더 몰아넣었다. 지난 시즌 멀티 골이 단 한번에 불과했던 선수가 해트트릭을 넘어 한 경기 네 골을 퍼부은 것이다. 마치 지난 일곱 경기의 부진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유병수의 오른발과 머리를 떠난 공들은 포항의 골망을 계속 갈랐다.
“나 혼자만 못하면 상관 없었지만 팀도 같이 부진해서 더 힘들었다. 매일 지는 데 공격수인 내가 하는 게 없었다. 골 넣기 전까진 뭘 해도 힘이 안 나고 많이 힘들었다. 그나마 형들이 훈련 중에 분위기를 풀어준 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이다. 그래서 계속 힘이 나 골을 넣었던 것 같다.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닌 동료들과 함께 넣은 골이었다.”
경기 후 인천 서포터들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돌아온 자신들의 영웅을 무등 태웠다. 페트코비치 감독과 마찬가지로 부진할 때도 언제나 자신을 지지해 준 이들에게 유병수는 해트트릭의 선물로 받은 축구공과 자신이 신었던 축구화를 미련 없이 건넸다.
팬들과의 축제를 마치고 돌아온 유병수에게 페트코비치 감독은 “오늘은 마음껏 기뻐해라. 대신 내일부터는 잊어버려라”고 말했다. 자신감을 되찾은 유병수에게 그가 줘야 할 것은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FA컵, K-리그, 목표인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까지. 인천은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다. 페트코비치 감독의 신뢰 속에서 멋지게 일어선 유병수의 활약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사진 제공=인천 유나이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