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TD기자단] 인천유나이티드의 미래 푸른 전사를 소개하는 시간. 이번에 만나볼 주인공은 U-18 대건고의 ‘캡틴’ 구본철이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탄탄한 기본기와 번뜩이는 센스를 두루 지닌 자원인 구본철은 훗날 인천의 중원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이행할 수 있는 자원으로 기대받고 있다.<프로필>이름 : 구본철
생일 : 1999년 10월 11일
등번호 : 7 (주장)
출신교 : 장안중-대건고
키 : 171cm / 몸무게 : 68kg캐나다에서 성장한 그가 한국에 돌아온 계기?
구본철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형과 누나의 공부를 위해 캐나다 토론토에 안착했다. 그는 “한국어를 할 줄은 알았지만, 쓰거나 읽을 줄은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초교 5학년(12세)이 되던 해 한국에 돌아왔다. 구본철은 “축구하고 싶었다. 아버지께 축구를 안 시켜주면 한국에 안 간다 했다”고 말했다.
장안중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리프팅을 10개도 못했다. 그저 감독, 코치님이 시키는 대로 다했다”며 회상에 젖었다. 이어서는 “밤낮으로 죽어라 노력을 했다. 중 2가 되며 서서히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중 3이 되면서 주전을 꿰찼고, 포워드로 뛰면서 춘계연맹전, 서울협회장기, 주말리그에서 득점왕을 탔다”고 덧붙였다.
축구에 늦게 눈 뜬 구본철, 대건 전사가 되다
대건고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중3 첫 대회 춘계연맹전 때 잘했다. 그때부터 스카우터 선생님께서 계속 대건고로 오라고 제의하셨다”며 “프로 산하팀을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일반 학원 팀에는 가기 싫었다. 일찌감치 대건고에 가는 것으로 약속을 맺었고, 진학 걱정 없이 편한 마음으로 축구를 했던 것 같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막상 대건의 전사로 거듭나보니 순전치 않았다. 임중용 감독(현 인천 코치)과 면담을 통해 호된 야단을 맞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과 면담을 하는데, ‘이렇게 할 거면 짐 싸서 집에 가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살아남기 위해 고쳐야 하는 부분을 집어 주셨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때부터 구본철은 중1때 그랬듯 고1이 되서도 밤낮으로 또 죽어라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지금의 구본철을 만들어준 고마운 선배들은?
구본철은 노력의 대명사로 꼽힌다. 2015년 고1 시절 표건희(인천대)의 부상으로 최범경(광운대)의 파트너로 낙점되며 반주전조로 활약했다. 그는 “매 경기마다 그냥 죽어라 뛰었다. (최)범경이형은 정말 듬직했다. 형한테 욕도 많이 먹기는 했지만,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면서 “중원이 파트너로서 잘 맞았던 것 같다. 범경이형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선배 표건희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구본철은 “고1때 남들 외출 나갈 때도 못나가게 막고 꼬박꼬박 자기 운동에 데리고 나가는 (표)건희형이 미웠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다. 나를 믿고, 도와주고, 좋은 말도 해주고, 챙겨주고 했던 걸 고3이 돼서야 느낀다”고 덧붙이면서 오늘날 주전이자 주장으로 거듭난 자신의 또 다른 멘토를 소개했다.
고2 초반의 시련이 오늘날 큰 교훈이 되다
고2 초반 구본철은 부상으로 동계훈련 중반에 합류하며 삐끗했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꼬이고 잘 안 됐다. 첫 대회(대한축구협회장배) 예선 탈락의 수모를 맛보기도 했다. 구본철은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선생님, 동료들 등 주위의 좋은 사람들이 많이 도와줘서 그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때의 시련이 오늘날 정말 큰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K리그 주니어 전기 4위, 후기 2위를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대회가 있으니, 바로 목전에서 우승을 놓친 K리그 U18 챔피언십이다. 구본철은 “팀원 모두의 사기가 충만했던 대회다. 한 마음으로 뛰어 결승까지 갔다.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서 부산에 패했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사령탑 교체 “부침 없다”…주장은 힘든 역할
고3이 된 올해. 임중용 감독이 프로팀 코치로 떠나며 기존 코치였던 전재호 감독이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구본철은 “임중용, 전재호 선생님 모두 스타일이 비슷하시다. 실력보다 인성을 중시하시고, 패스와 컨트롤 등 기본적인 것을 강조하시며, 잘하는 선수들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한다”며 사령탑 교체에 따른 부침이 없음을 선 그었다.
주장의 임무를 맡은 소감은 어떨까? 그는 책임감이 들고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구본철은 “주장은 많이 힘든 것 같다. 고생도 많이 해야 하고, 희생도 해야 한다”면서 “옆에 있는 동료들이 많이 도와줘야 한다. 내가 고2 때 잠깐 부주장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주장이었던 (박)형준이형(인천대)을 잘 도와주지 못한 것 같다는 걸 느낀다”고 대답했다.
후회 없는 한 해 희망…“인천을 빛내고 싶다”
인천 대건고는 첫 대회 금석배에서 4강(공동 3위) 입상했다. 4강 진출까지의 분위기는 좋았으나 방심과 체력 저하라는 변수가 결승행을 가로막았다. 구본철은 “금석배 4강을 주춧돌 삼아 K리그 주니어는 물론이며 챔피언십, 왕중왕전 등 모든 대회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아직까지 우리 선배들이 해내지 못한 전국대회 우승을 꼭 해내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지금 인천에는 구본철의 맞선배 3인방(김보섭, 김진야, 명성준)이 프로 무대를 누비고 있다. 그는 “정말 부럽다. 나도 하루 빨리 프로 선수가 되고 싶다”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끝으로 구본철은 “고등리그에도 서포터분들이 오셔서 응원해주시는데 정말 큰 힘이 된다. 아직 부족하지만 훗날 인천을 빛내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본 인터뷰 내용은 인천유나이티드 월간매거진 ‘THE UNITED’ 4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글 = 전세희 UTD기자 (zshee95@hanmail.net)
사진 = 전세희, 이명석 UTD기자저작권자 - 인천UTD기자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