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13 박태민/1986년 1월 21일/180cm, 74kg
광양제철남초-중앙중-금호고-연세대
2008년~2010년 수원삼성블루윙즈(10경기출전)
2011년 부산아이파크(23경기출전 1골 1도움 )
2012년 인천유나이티드(23경기출전 2도움)
프로통산/56경기 출전 1골 3도움
인천통산/23경기 출전 2도움
프로통산 53경기 출전 중, 인천에서의 기록은 23경기. 소위 말하는 강팀에서 프로데뷔를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하며 프로 5년차가 되었다. 그는 인천에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다.
축구천재 박태민
공차는 것만으로 마냥 좋았다. 더불어 실력까지 갖춰졌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그는 축구를 처음 접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틈틈이 그에게 기술적인 것들을 일러줬기 때문에 또래에 비해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누가 봐도 축구를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잘한다고 하니깐 더 자신감이 생겨서 열심히 뛰었던 것 같아요." 물론 어렸을 때는 꿈을 키워주기 위해 '잘한다. 잘한다.'라고 하지만 그의 경우는 빈말이 아닌 정말 잘한다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열정으로 배워온 축구가 지금의 그를 있게 해줬다.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
그의 프로 시작은 누구나 부러워 할만 한 수원삼성이었다. 프로 1년차 때는 출발이 좋았다. 쟁쟁했던 선수들을 재치고 8경기나 뛰었다. 챔피언결승전에서 풀게임까지 출전하며 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발은 좋았으나 2년차, 3년차가 되면서 경기를 나설 수가 없었다. 그의 무대가 좁아지면서 그는 다시 솟아날 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수원에 있을 당시, 선수들끼리 잘 지내고 분위기도 좋았지만 운동적으로 이끌어 주는 누군가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힘든 것을 혼자서 이겨내려고 하니 더 힘들더라고요." 그렇게 그는 꿈에 그렸던 프로무대를 그저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애인과도 같은 인천유나이티드
인천으로 이적 후, 그는 단 한경기만을 제외하고 모두 선발 출전하였다. 4년 동안 타 팀에서 뛴 경기수의 반절을 인천에서 뛴 것이다. 축구선수라면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그를 기용해준 인천유나이티드는 소중한 애인과도 같은 존재이다. 타 구단에 비해 시설은 조금 열악하지만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에 '매우만족'하고 있다. "웨이트를 해야 하는데 운동하려면 숙소에서 문학까지 직접 와야해요. 운전을 계속하니깐 다리 쪽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행복해요." 푸른 잔디를 밟으며 90분 동안 쉴 새 없이 누비며 짜릿한 승리를 맞보고 있는 요즘 그는 더할 나위없다. 타 팀처럼 운동하기에 좋은 여건을 딱 갖추진 않았지만 그는 '진짜 축구선수'로 다시 거듭날 수 있게 해준 인천에 영원한 선수로 남고 싶다.
프로 1년차 같은 프로 5년차
인천으로 합류하기 전, 그는 4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다. 4개월 동안 운동을 쉬어서 전지훈련을 갔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결실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에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프로 1년차 때의 마음을 갖기로 한 것이다. 수원과 부산에서 많은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며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그는 고민의 고민이었다. 그는 공격적인 움직임이 활발한 자신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부족한 것은 연습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요즘은 올림픽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더욱 자극을 받고 있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면서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생각도 함께 하고 있다 고한다. 그는 아무것도 몰랐던 신인신절,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렸던 그때의 감정을 되살려 프로 5년차지만 프로 1년차 때의 기분으로 인천에서 새 출발을 하고 있는 중이다.
공격 포인트 5개
인천에서의 시작은 매우 힘찼다. 새로운 팀에 오면서 굳은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공격 포인트 5개를 올리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팀이 어수선하여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팀 분위기가 워낙 좋다보니깐 자신의 플레이 또한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고한다. 자신이 올려주는 크로스를 선수들이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자 그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이보나 (한)교원이한테 많이 공을 올려줬는데 득점으로 연결은 안 되더라고요. (한)교원이한테 왜 내가 올려준 것은 골을 못 넣느냐 고하니깐 제가 올려주는 건 이상하게 안 들어간대요. (한)교원이랑 저랑 스타일이 안 맞나봐요." 수비수이다 보니 선수들을 위하는 많이 패스를 했지만 그것이 득점으로 연결되지 못하자 그는 해결책을 내렸다. 바로 골 찬스가 있을 때는 과감하게 슈팅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과감한 슈팅으로 인해 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더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런 그는 지난 대전전과 서울전에 득점은 아니지만 도움을 하면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목표로 했던 것의 반절은 성공했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경기는 많다. 공격 포인트 5개가 아닌 더 많은 포인트를 올리며 인천의 승리의 주역이 되는 날이 계속해서 왔으면 좋겠다.
항상 지켜봐주는 가족들
그는 2남 3녀 중 막내이다. 큰 누나와는 무려 13살의 차이이다. 부모님보다 형, 누나들이 그를 더 챙겨주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시면서 셋째 형이 아버지 역할을 도맡아했다. "막내이기도 했고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저를 더 신경 쓰고 더 챙겨준 것 같아요. 저도 이제는 성인이 되었고 형, 누나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던 것들을 돌려주려고 하고 있어요." 현재 인천에 그의 큰누나와 둘째누나가 거주하고 있다. 경기가 있을 때면 누나들과 조카들이 경기장에 찾아와 그를 응원해준다고한다. 가족이라는 한 단어만으로 그의 힘든 점은 씻은 듯이 없어진다. 그런 가족들의 영원한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그 또한 없었을 것이다.
그의 좌우명은 "정직하게 살자."라고 한다. 축구는 연습을 한만큼 그 결과가 그라운드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캐치하여 그는 그것들을 채워나가려고 한다. 연습을 한만큼 그라운드에서는 그의 실력이 정직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는 지금도 성실히 운동장을 누비고 있다.
글-김유미 UTD기자(ubonger@nate.com)
사진-이상훈 UTD기자((mukang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