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카리스마' 인천 유나이티드의 캡틴 김남일이 지난 3월 31일 대전 시티즌과의 리그 4라운드 홈경기에서 K리그 통산 200경기 출전의 금자탑을 쌓았다. 지난 2000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데뷔한 지 14시즌 만에 개인 통산 200경기라는 고지에 올라섰다. 이날 대전과의 경기에 모든 관심이 '돌아온 풍운아' 이천수의 복귀 소식에 쏠렸지만 사실 묵묵히 제 구실을 하고 있는 주장 김남일의 200경기 출전이라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었다. 만약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면 많은 축하를 받았겠지만, 경기가 패배로 마무리되어 그의 200경기 출전기록은 빛이 바래고 말았다. 김남일은 많은 팬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전 국민적 축구스타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기량을 지닌 것에 모자라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카리스마까지 두루 지닌 모든 것이 완벽한 선수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역시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당시 김남일은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기용되면서 터프한 플레이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며 대한민국 히딩크호의 4강 신화의 주역으로 우뚝 선 바 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 K리그 무대에서도 전남 드래곤즈 소속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였다. 그러다가 2005년 K리그 명문구단으로 꼽히는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며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2006년에는 수원 삼성의 주장을 맡으며 팀의 리그 준우승, FA컵 준우승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일원으로 독일 월드컵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듬해 KBS 미녀 아나운서 김보민씨와 결혼해 새로운 스포츠 스타-연예인 부부 탄생을 알렸다. 2008년 일본 J리그 빗셀 고베로 이적하며 2년간 활약하고 2009년에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톰 토스크에서 마찬가지로 2년간 활약했으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맏형으로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지난 2012년 고향 팀 인천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늘 최고의 구단에서만 뛰던 그에게 있어서 시민구단 선택은 자칫 모험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령탑이었던 은사 허정무 감독의 적극적인 구애도 있었고 고향에서 멋지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2012년 초반에는 모든 것이 안 좋았다. 구단 재정에 문제가 생긴 것을 시작으로 팀은 최하위까지 추락했고 허정무 감독은 자진 사퇴를 할 정도로 최악 상황의 연속이었다. 당시 김남일은 맏형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팀을 정상궤도로 올리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그리고 소속팀 인천은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섰다. 후반기 19경기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쾌조의 분위기로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2013년. 김남일에겐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즌이기 때문에 팀을 위해 봉사하자는 마음으로 주장을 맡았다. 그는 주장을 맡으면서 팀의 최고선임으로서 주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게 되어 책임감이 막중하지만, 경험을 바탕으로 팀을 잘 이끌겠다고 밝혔다. 2013년 김남일이 보여주는 모습은 회춘 그 자체이다. 비록 나이 탓에 스피드가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상대의 공격 전개를 전력으로 저지하고 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 연결과 함께 전성기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량과 투지 역시 보여주고 있다. 김남일은 사실상 올 시즌을 자신의 축구 선수로서의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시즌 시작 전부터 공표했다. 그의 축구 인생의 시작은 인천이었으며 끝 역시 큰 이변이 없는 한 인천이 될 것 가능성이 크다. 흔히 시작과 끝은 아름답다고 한다. 올 시즌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서 오랜 시간 쉼 없이 달려온 김남일 그의 축구 인생 역시 아름답게 마무리되길 바라본다. 글 = 이상민 UTD기자 (power1360@hanmail.net) 사진 = 남궁경상 UTD기자 (boriw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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