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6~2013.04.13 인천 유나이티드 1-1 포항 스틸러스
인천 유나이티드 3-1 대구 FC
나는 포항에서 축구를 봤다.
악몽 같은 지난 2주를 돌이켜보려면 반드시 호흡을 길게 가다듬어야 한다. 인천은 원정경기에서 빗속의 혈투 끝에 강적 포항과 1-1로 비겼고 대구 원정에서는 이석현, 한교원과 안재준의 골로 3-1의 승리를 맛봤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나는 어땠나? 나는 그야말로 자책골로 9골은 넣은 것 같은 형국이었다.
우선 보리음료를 들이키고 돌이켜 본 나의 2주는 이랬다. 끝없는 괴롭힘-스트레스-기절-병원-포항. 이 모든 일은 정확하게 4월1일에 시작되었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는 찬란한 4월에. 전 날 좋은 꿈을 꾸고 기분 좋게 출근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매일 7시30분이면 걷는 길이 난데없이 대륙 반대편의 어느 이름 모를 길거리 같았고 공기는 12월의 그것처럼 차가웠다.
‘이상한데. 어제 꿈도 좋았는데.’
그리고 출근 후 내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오전에 고객이 좀 몰리고 새로운 상품 소개하느라 몇 번이고 공부한 내용을 복기하느라 진땀 뺀 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는 월요일이었다. 그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자신을 VVIP라 소개한 여자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악몽이 시작되었다. 내가 신분증을 받아 복사한 게 비뚤게 되었다면서 뾰족한 손톱을 내 눈앞까지 들이밀며 “중요한 고객을 이따위로 대접하는 게 어딨냐?”는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사과하고 또 거듭 사과했지만 그 고객은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지점장님을 찾았다.
‘내 선에서 조용히 끝내자. 참자. 참자.’
이 말을 속으로 얼마나 외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점장님이 아니라 나와 조용히 해결하자는 요청은 그 여자의 가방 던지기 신공 앞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주위에 흩뿌려진 화장품이며 지갑을 주워 가방에 다시 담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가방을 정확히 말하면 가방위에 살포시 얹혀 진 내 손을 하이힐로 밟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지점장님이 정중하게 그 고객을 접대실로 데려가는 걸로 조용히 마무리 되는 듯 했던 이 날의 사건은 2주 동안 내내 반복되었다.
어느 날은 바짝 깎은 내 손톱이 흉물스럽다며 (남자 손톱이 길어봐야 얼마나 길다고.......) 컴플레인을 하지 않나 내 글씨가 지렁이 기어가는 것 같아 어지러움 증과 구토를 유발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원래 하던 대로 열심히 귀 기울이고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며 친절하게 대답했지만 점점 도가 넘어서는 반응에 나는 아연질색하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나타난 지점장님이 고객을 데리고 차를 대접하고 식사권을 주고 연말 VIP행사에도 초청하겠다며 문제해결에 나섰지만 늘 수포로 돌아갔고 그 여자는 결국 ‘고객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나섰다’는 항목으로 나를 고소하겠다고 윽박지르기에 이르렀다.
매일 오후 2시면 시작되는 이 정신고문에 나는 ‘넉 다운’이 되어 결국에는 이틀정도 집에서 쉬라는 병가를 받았지만 결국 은행에서 졸도하여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갔다. 의사가 내게 내린 진단은 ‘패닉 디스오더’
“세상일 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 예요. 푹 쉬세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어찌나 간결했던지 나는 그 말을 수첩에 받아 적고 싶을 정도였다.
‘그 세 가지가 제가 바로 원하는 거라고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삼키기를 몇 번. 간호사는 내 팔에 수액바늘 꽂아주고 자리를 피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는 포항원정 생각뿐이었다.
‘어떡하면 포항에 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나는 이미 포항 원정 버스를 신청했던 것이다. 그리고 포항으로 떠나는 날 아침, 나는 펄펄 끓는 이마를 몇 번이고 다시 만져가며 분명 뜨거운 것은 내 이마가 아니라 내 손일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내 손을 쳐내며 겨드랑이에 온도계를 꽂아주었는데 열이 39.5도에 육박했다. 결국 나는 포기하고 집에 남기로 했다. 하지만 누워있는 대도 머릿속에는 온통 포항 생각뿐이었다.
‘그래, 내가 포항에 단지 축구를 보러 가는 건 아니지. 선수들이 추천해줬던 과메기 맛집도 가야하고 포항제철공고에 가서 벚꽃도 좀 보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용경기장도 밟아줘야지. 아프다고 누워만 있음 쓰나.’
그리고 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흩날리는 빗발이 ‘벚꽃’을 구경하기에는 어림도 없는 날씨라는 걸 알려줬지만 괘념치 않았다. 결국 나는 오전 10시 비행기를 무사히 잡아타고 50분 만에 포항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공항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음을 알아차렸다. 거기에 더불어 휴대폰도. 고로 나는 공항조차 빠져나갈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스마트’한 휴대폰이 ‘멍청한’ 나대신 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기에 전화번호도 모르는 상황. 내 눈앞에 떠오르는 유일한 사람은 아픈데 어딜 가냐며 소리를 지르던 우리 엄마 단 한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포항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창피함과 수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대기실에 앉아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눈앞에 보이는 커피숍. 나는 카페로 들어가 창가에 놓인 노트북을 켜고 자리 잡았다. 분명히 겉에는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한 컴퓨터이오니 장기간 사용은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늘 중계는 SpoTV 랑 다음, 네이버랬어.’
그리고 나는 시간을 꾸역꾸역 보내며 2시까지 버텼더랬다. 그리고 “올레 TV가 수신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십시오.”라는 멘트에 툭툭 잘려나간 전반전을 허벅지를 찔려가며 보다가 다른 포털사이트로 갈아타 무사히 후반전까지 볼 수 있었다. 이 날은 손대호에 의한 손대호를 위한 경기였다.
‘그래 승삼이는 못 건졌어도 1점이 어디야. 그것도 원정에 비도 오는데.’
나는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쨌든 나는 포항에서 경기를 보긴 했지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일주일을 더 은행에 찾아왔다. 또 다시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나는 대구원정은 신청도 하지 못한 채 인터넷으로 간신히 중계를 찾아 봐야했다. 그리고 그 고객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지 월요일 7시까지는) 이제는 평화롭게 축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은 내꺼야....... *본 내용은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 = 최하나 UTD기자(lastchristmas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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