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입어야 할 유니폼>
두루미인 듯 두루미 아닌 두루미 같은 나.
두루미와 썸을 탔다. 나는 사람이지만 탈을 쓰고 유티가 된 이상 두루미가 되어야했다. 먼저 유니폼을 입은 뒤 양말을 신고 머리탈을 쓰고 인형발까지 장착. 그 다음 머리가 삐져나오지 않게 하나로 묶어 올리고 하얀 장갑을 껴서 손을 가린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말을 하지 않기. 하지만 초보인 나는 자꾸만 말을 튀어나왔다. 특히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실수로 부딪힐 때는 더 그랬다. 그럴 때마다 무조건 입을 앙다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숨 쉴 구멍이 있기는 하지만 큰 도움은 안된다>
극한알바……. 그 명성대로
인형탈 알바를 하겠다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면서 말리겠다는 경험담이 인터넷에 수두룩했다. 포털검색창에 치기만 하면 극한알바라며 치를 떠는 후기들이 넘쳐났다. 솔직히 그 말에는 과장이 섞여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선택권이 없으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정 하려거든 여름은 꼭 피하세요.’
하지만 그 조언마저도 귀담아 듣지 못 한 나는 철저히 청개구리였다. 다행이라면 다소 늦은 오후부터 일을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유티는 인형옷 대신에 유니폼을 입었다.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실제로 옷을 착용하고 나니 더위보다는 다른 게 문제였다. 탈을 쓰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인형발을 신으면 걷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리고 조금만 뛰거나 격렬한 동작을 하면 숨이 막혀왔다.
<앞을 봐야하는 데 유티의 눈과 눈 사이는 너무 멀다....... 두루미인 척해봐도 두루미가 아니니 이거 원ㅠ_ㅠ>
우선 탈을 쓰면 양쪽 눈에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있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눈과 눈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어 한쪽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어 앞을 보기위해서는 한 쪽 구멍에 두 눈이 위치할 수 있게끔 자리를 잡거나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고개를 돌려주어야 했다.
또한 인형발의 구멍은 너무 커서 신발을 신은채로 착용해야 하는데 이건 마치 꼬마가 삼촌신발을 신은 모양새와 다를 바가 없었다. 덕분에 계단을 내려가거나 올라갈 때면 헐떡거리는 발 때문에 다른 유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본분대로 발랄하게 관람객들을 맞으려고 조금만 방정을 떨거나 뛰면 약 30초 후부터 숨이 막혀왔다. 거울로 확인하지 않았으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화끈거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입장하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인형탈의 명암
유티로 변신한 동안 좋았던 점은 역시 관중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사람이었을 때는 듣지 못했던 ‘귀엽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또한 ‘사진찍자’는 권유도 수없이 들었다. 두루미가 사람의 처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탈을 쓴 나를 사람이 아닌 마스코트로 대우해주는 사람들의 태도가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무한한 사랑과 호기심을 보내는 관중도 있는가하면 짓궂은 장난으로 못되게 구는 관중들도 있었다. 특히 아기들은 꼬집거나 때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른의 경우에는 자꾸만 성별을 맞춰보려고 하거나 툭툭 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도가 지나치면 탈을 벗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내가 몰랐던 그들의 진짜모습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천송이는 잘나갈 때가 아니라 정말 힘들 때 진짜 내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과 똑같지는 않지만 엇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다. 기자증을 맨 내가 아니라 인형탈을 썼을 때의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궁금하기는 했다.
그리고 평소 가졌던 선입견을 깨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둘씩이나. 톡톡튀는 언행으로 주목받아 당돌하고 거침없는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던 김도혁 선수가 그 첫 번째 주인공이었다. 워밍업을 하고 들어오던 그는 구석에 있던 유티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 다음 경기시작 전에 에스코트키즈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데 어디에 설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나를 카메라에 잘 나오는 위치에 세워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진에 잘나오라고 자리까지 양보하며 잡아줬다. 그건 SNS를 하며 팬들과 소통하는 딸바보 이천수 선수였다.
<옆에서 따라 달리고 또 달린다>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전반전과 후반전이 끝날 때쯤 관중석에서 내려와 그라운드 밖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그때 잠시 탈을 벗을 수가 있었다. 난간에 걸터앉아 탈을 손에 든 채로 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봤다. 그 순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에서 자원 활동가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의 임무는 개막식에 참석한 유명배우들에게 자리를 안내하는 역할이었다. 멋지게 차려입고 한껏 꾸민 그들을 바로 옆에서 계속 보다보니 신기하다거나 좋다는 기분보다는 내가 들러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와 똑같았다. 승리를 위해 사력을 다해 뛰고 있는 선수들과 경기를 무사히 잘 치러야하기에 대기하는 직원들 그리고 나. 유티는 그라운드 밖의 이방인이었다.
배려와 매너를 잊지 마세요
사실 처음에는 인형탈을 쓰고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실컷 춤도 추며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이 경험이 좋다거나 싫다는 한 마디 말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 미묘했다. 어쩌면 그건 나 또한 유티를 인형으로만 바라봤다는 걸 입증하는 지도 몰랐다. 결국 유티는 사람이 하는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티가 되어서 좋았던 점은 바로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여름에 이사를 하게 되면 차갑게 물을 두 통 얼려 건네라는 책의 구절은 바로 당사자가 되어 경험해봐야만 나올 수 있는 조언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내가 되어보니 유티에게 필요한 건 바로 관객들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배려와 매너였다.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글= 최하나 UTD기자 (spring860@naver.com)
사진= 남궁경상 UTD기자 (boriwoll@hanmail.net), 최하나 UTD기자 (spring8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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