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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ning] 윤기원 '미래의 인천 수문장 나요 나!'

245 UTD기자단 뉴스 UTD기자 이상민 2010-04-19 1370
윤기원 (Yoon Ki Won) 출생 : 1987년 5월 20일 (부산광역시 화명동 출생) 체격 : 188cm 79kg 소속팀 : 인천 유나이티드 학력 : 경남 거제고 - 아주대 졸업 경력 : 2005 전국고교선수권 우승, GK상 2007 KBS N 전국 1,2학년 춘계대회 우승, GK상 최후방에서 든든히 인천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지키는 김이섭, 성경모, 송유걸 골키퍼. 이들 3인방 뒤에는 훗날 이들의 대를 이어 인천의 골문을 든든하게 지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과 훈련을 마다하지 않는 한 신인 선수가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윤기원. 2010년 드래프트 5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게 된 그의 솔직담백했던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한다. 축구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 어린 시절 운동을 좋아해서 주말마다 리틀 야구단에서 야구를 했었다. 그러다가 김해 합성초 5학년에 재학 중인 어느 날, 하굣길에 운동장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축구부 감독님이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로 축구를 해보지 않겠냐고 그에게 권유하셨다. 전문적으로 축구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 부모님을 설득시켰다. 당연히 부모님께서는 완강히 반대하셨다. 굴하지 않고 그는 부모님의 허락 없이 무작정 운동부에 합류했고, 끝내 부모님의 마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그렇게 축구와 첫 만남을 가졌다. 공격수에서 골키퍼로의 전향. 처음에 공격수로 시작했었던 그가 골키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6학년으로 올라갈 즈음에 골키퍼가 다치는 바람에 경기에 한번 나섰는데 제가 곧 잘했어요(웃음). 그때부터 골키퍼를 하게 되었죠.” 하지만 그 이후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는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하기 위해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런데 1주일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건 또 무슨 사연일까? “김해 외동 초등학교 감독님이 예전에 제가 경기하는 모습과 소문을 듣고 무작정 학교로 찾아와서 데려가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부모님을 완강하게 설득해서 또 다시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당시 기분은 얼떨떨했어요.(웃음)” 중학교 진학, 그에게 찾아온 첫 번째 위기. 거제중학교에 진학하여 1년간 운동부 생활을 하던 그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한다. 학교의 재단인 대우가 파산하면서 축구부 지원이 뚝 끊겨서 해체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는 거제 연초 중학교로 전학하여 계속해서 축구를 하게 되었고, 꾸준히 운동하면서 실력을 키워 나갔다. 노력의 대가였을까? 중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에 4강을 이끌었고, 경남지부 중학교 최우수 선수상 수상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진학,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위기. 선배와 선의의 경쟁을 바탕으로 주전으로 나서던 그에게 첫 장애물이 나타났다. 3학년에 올라갈 때 감독이 바뀌면서 학교랑 트러블 생긴 것이다. 윤기원은 원래 회비를 면제받는 교내 장학생이었다. 그런데 감독이 바뀌면서 텃세싸움으로 인해 그에게 회비를 내라는 학교 측의 지시가 내려온 것이었다. 어이없는 텃세에 어머니께서 반발하시며 회비를 내지 않으셨다. 결국 동계훈련 도중에 팀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 무려 6개월을 쉬었다. “대학진학이 달린 상황에서 치명적인 치명타였죠. 골키퍼가 한명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설득하러 오셨어요. 6월에 김해에서 시합이 있었는데 그 때 팀에 합류하게 되었죠. 복귀 후 마지막 대회에서 전국 선수권 대회 우승을 했어요. 8강전, 4강전, 결승전 이렇게 3경기 뛰고 팀을 우승을 이끌며 GK상을 받았죠.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해요.”(웃음) 아주대 진학, 또 다시 찾아온 어두운 그림자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마자 윤기원은 무릎 연골이 찢어지면서 동계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 피나는 노력과 고된 재활을 마치고 빠른 회복으로 2개월 만에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다시 부동의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차며 1-2학년대회 우승을 이끌면서 GK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에게 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했다. 3학년에 또 무릎 연골 파열에 의한 수술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진로가 달린 가장 중요한 4학년 동계훈련 때 허벅지 근육 부분파열로 인해 피가 응고되는 부상을 입었고, 역시 피나는 재활 끝에 팀에 복귀하여 경기에 나섰으나 전국 대학 선수권 대회 준결승전에서 단국대에 패하고 말았다. 드래프트 당일. 그는 무엇을? 운명이 결정되는 드래프트 당일.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결과를 눈뜨고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오전에 휴대폰 전원을 꺼놓고 동네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왔어요.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이 어찌나 두렵던지 발걸음이 무겁더라고요.(웃음) 비록 높은 지명순위는 아니었지만 뽑혔다는 자체에 만족했고 너무 좋았어요. 축구팬들 앞에서 또 다시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좋았고, 또 저를 뽑은 팀이 기회의 팀 인천 유나이티드라서 기분이 배로 좋았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 남는 고등학교 팀 이탈사건 “제가 고2때 일인데요, 거제고가 정말 유력한 우승 후보였어요. 그런데 예선전에서 탈락한 거예요. 이대로 있으면 선생님들한테 정말 크게 혼날 것 같아서 무서운 마음에 7명의 동료들과 함께 도주를 계획했어요. 거제도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면 길이 하나라서 걸리거든요? 그래서 거제항에 가서 경남 진해로 가는 배를 타고 이동했어요. 배에서 내리자마자 무작정 시내 버스타고 가다가 버스 터미널을 보고 내리고 표 파는 아줌마한테 제일 빠른 거 아무거나 달라고 했어요. 그게 대구가는 표였고, 무작정 대구에 와서 여관을 잡고 지내다가 4일째 되는 날부터 노가다를 했어요. 직접 번 돈으로 눈물 젖은 밥도 먹어봤죠. 돈을 번다는 것이 정말 장난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결국에는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1주일 되는 날에 걸렸는데 선생님들께서 크게 안 혼내시더라고요.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에요.(웃음)”
ⓒ 윤기원 선수가 구단 엠블럼에 하트를 그려 넣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장,단점? “장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면서 경기를 많이 뛰었거든요, 그래서 경기 운영 능력이 나쁘지는 않은 편인 것 같아요. 단점은 학교에는 골키퍼 전문 코치가 없어서 체계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제가 알아서 해야 했거든요. 프로에 와서는 신범철 코치님께서 기초부터 차근차근히 가르쳐주세요. 제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죠. 축구를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고 있어요.” 내 목표? 당연히 데뷔전! ‘1군 프로데뷔전’ 신인이라면 당연히 이 목표를 꼭 이루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출중한 선배들이 많지만 언젠가 찾아올 데뷔전을 위해 꾸준하고 열심히 운동할 것입니다. 제 자신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차근차근 준비해야죠. 데뷔전의 꿈. 꼭 이루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선배. K-리그 탑 클래스 김이섭 선배. 존경하는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김이섭 선수를 택한다. “저보다 13살이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몸 관리와 아직까지 뒤쳐지지 않는 체력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제가 정말 본받고 싶은 선배님이시죠. 그밖에 (성)경모형, (송)유걸이형도 평소에도 아낌없이 지적과 칭찬을 해주세요. 팀 내 골키퍼 선배님들이 모두 저에겐 존경의 대상입니다.” 절친 룸메 김민수, 안재준, 정 혁 그리고 한덕희. 가장 친한 선수는 누구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숙소를 같이 쓰는 김민수, 안재준, 정 혁 201호 꽃미남들과 가까이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윤기원 선수. “(김)민수형은 화려한 입담과 재치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청하고, (안)재준이형은 평소에는 묵묵하다가 가끔씩 빵 터트리는 말을 하는 재밌는 선배고요, (정)혁이형은 정말 착하다는 말 밖에 할 것이 없어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진국이에요. 그리고 대학교 1년 선배 (한)덕희형도 친하게 지내요. 덕희형 역시도 민수형과 같이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해요. 덕희형은 정말 운동만 하는 선배에요.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요. 덕희형의 그 마음가짐 정말 꼭 본받고 싶어요.”(웃음)
ⓒ 지난 여름휴가. 계곡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사랑하는 나의 가족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 윤기원이 중학교 시절 집안에 큰 위기가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그 위기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가정을 다시 살려 내시고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그에 대한 지원은 절대 아끼지 않으셨다. 아들 앞에서 절대 힘든 내색은 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항상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던 그의 부모님. “제가 부모님께 평생 갚지 못할 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프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며 부모님께서 여태 베풀어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갚아서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에게는 하나뿐인 누나가 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 남매 지간에도 표현이 별로 없다. 하지만, 누나의 사랑이 엄청나게 큰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누나의 개인 블로그에 가면 저에 대한 사진과 온갖 정보들이 차근차근 게시되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정말 큰 힘이 되요. 제가 이런 말은 우리 가족에게 한 적이 없는데 무뚝뚝한 아들, 동생으로서 가족에 한마디 하려합니다. 아,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웃음) 그렇지만 이 기사를 보고 기뻐할 우리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렵게 입을 떼겠습니다. 우리 가족 정말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삽시다!” 팬 여러분! 한번만 도와주십시오!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신인 윤기원입니다. 하루 빨리 데뷔전을 통해서 팬 여러분과 만나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팬은 없겠지만, 한번 도와주십시오.(웃음) 제가 지금은 비록 2군에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훗날 인천의 골문을 지키는 그날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을 할 테니 팬 여러분께서도 제 이름 윤기원 석자 기억해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프로라는 곳. 정말 넘을 수 없는 벽일까? 노력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피나는 노력 후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최고’라는 꿈을 향해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초짜 신인 골키퍼 윤기원. 이제 막 그가 드높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날개 짓을 시작했다. 훗날 그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 이상민 UTD기자 (power13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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