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9 인천유나이티드 3-2 FC서울
오늘을 공휴일로 지정하도록 하자. 시민들은 모두 모여 오늘의 경기를 다시 돌려보고 또 돌려보며 가벼운 월급봉투와 상사의 잔소리는 잠시 잊도록 하자. 아니 나만이라도 그럴 수 있겠지. 오늘은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원정경기가 있었다. 어제 회식이 끝나고 집에 오니 새벽2시. 술이 잔뜩 취한 와중에도 알람까지 맞춰놓고 잤건만 눈을 뜨니 벌써 12시.
‘해가 중천인데 아무도 깨우지 않다니.’
이불을 하이킥 하고 일어나보니 엄마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솟구쳐 “아이 씨 왜 안 깨웠어.” 하니 엄마가 “왜 깨우냐. 너 출근 하냐? 결혼식 간다며.”하고 보던 드라마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맞다. 어제 내일 어디 가냐는 엄마 말에 친구 결혼식에 간다고 대충 둘러댔다. 이 꼴로 차마 축구 보러간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한쪽 발 인대가 늘어나 지금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심한 건 아니지만 거동하는 게 무척 힘들다. 그것도 수습기간에 다쳐가지고 눈치도 엄청 보인다. 매일 아침 아빠는 나를 차로 출근시켜주고 욕을 한 바가지로 늘어놓으신다.
“으이구. 너 같은 자식 낳고 니네 엄마가 미역국을 먹었으니. 쯧쯧쯧.”
그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어 슬그머니 차문을 열고 내렸더니 “축구가 내 자식을 집어삼켰어.” 하고 한 마디 더 보태신다. 그렇다. 나는 얼마 전에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랑 축구를 하다 다쳤다. 솔직히 1년을 쉬고 어렵게 다시 들어간 회사라 공을 차기 싫었다. 왜냐면 나는 축구장에만 들어서면 이성을 잃기 때문이다. 적당히? 슬슬? 그런 건 전혀 없다. 일을 할 때는 소심모드지만 축구할 때와 볼 때는 전투모드다. 그 날도 그랬다. 한 명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대타를 서게 되었지만 나는 운동장에서 다시 한 번 이성을 잃고 거친 태클을 하다가 상대방은 쓰러뜨리지 못하고 내가 쓰러져버렸다. 창피해서 그 순간만은 잊고 싶다.
‘꿈 일거야. 꿈 일거야.’
속으로 주문을 외워보았지만 나는 의식이 또렷한 채로 운동장에 널브러져 있었다.
암튼 그 날의 빚도 있고 자식걱정에 맘 졸이는 엄마를 위해 더 이상 투정을 부리기 싫어 조용히 집을 나섰다. 밥도 굶은 채로.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전철로 갈아탄 다음 공항철도를 타고 다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내리니 경기시작 5분전이다.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는 관계로 노약자석까지 양보 받은 터라 힘은 남아돌았다. 일반석으로 끊으려다 생각해보니 여기는 숭의가 아니다. 원정석 표를 끊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데 함성이 장난 아니었다. 아. 근데 갑자기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편의점에서 캔 커피만 팔고 있을 뿐 아메리카노는 없다.
“아 씨 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벌써 귀중한 시간을 까먹고 있을 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분명히 홈플러스에서 판 댔는데.’
몇 번을 갈등하다 자리로 돌아오니 이미 전광판의 시계는 2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다.
‘다행이다. 많이 놓친 건 아니구나.’
경기에 집중하려는데 옆에서 치킨 냄새가 풍겨왔다. 맥주거품도 눈에 들어왔다.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앞줄에는 커플이 앉아 있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아. 나는 보살이다. 참고 볼 수 있어. 암. 그렇고말고.’
가뜩이나 성이 나있는데 FC서울 아디가 골을 넣자 더 이상 배고픔과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갑을 들고 기어이 홈플러스로 내려갔다. 함성소리를 뒤로 하고 절뚝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사람들의 눈빛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요. 나 축덕 맞아요.’
그리고 커피와 도넛을 사가지고 올라오니 스코어가 바뀌어 있다. 1:1.
‘이럴 수가. 으아아아아악. 동점골 넣는 걸 못 보다니.’
나는 이번만큼은 골 넣는 걸 놓치지 않으려고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치킨냄새에도 고개 돌리지 않았다. 커플보기를 돌보듯 했다. 나의 이런 노력에 하늘도 탄복했는지 오늘 우리 팀은 후반전에 두 골을 더 넣어 3:2로 역전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을 때 이런 기분이었나? 무엇인가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추하게 엉엉 울고 있었다. 상암에서 인천이 이기는 걸 보다니. “나 인천사람이예욧!”하고 일어나 외칠 뻔했지만 반대편 FC서울 서포터즈 수호신의 엄청난 숫자를 보고 자리에 그냥 앉아버렸다. 오늘 경기장에서 날 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묘사하겠지.
“파란색에 검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어떤 절뚝거리는 남자가 볼썽사납게 훌쩍이던데요.”
그렇다. 나는 창피 따윈 말아먹은 사람이다. 취업했을 때도 이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경품에 당첨 되서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이렇게 신나지는 않았는데. 미안하지만 엄마가 고등학교 3년 내내 급식 가지고는 어림도 없던 나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세 개씩 싸줬을 때도 이렇게 고맙지는 않았는데.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축덕 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수도가 아닌 그 언저리 어딘가의 광역시의. 게다가 시도민구단의. 하지만 뭐 어떤가. 나의 팀은 인천유나이티드다. 아 씨 이 순간에도 또 눈물 나네.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집에 갈 때 앉아서 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건 잠시 잊어두기로 하자. 아이 뭐 어때. 이겼으면 됐지. 인유만 잘하면 되지……. 다음번에는 커피는 미리 사가는 걸로. 아참 조기축구도 잠시 쉬는 걸로.
*본 기사는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글 = 최하나 UTD기자(lastchristmas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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