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3일 인천 유나이티드 2-1 대구FC 토요일 오후였다. 아빠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고 방에 들어가 풋볼매거진골 이라는 축구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성난 아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야 인마. 어른이 부르면 나와야지.” “나 못 들었는데…….요?” 아빠가 어른 운운하면 게임 끝이다. 이미 화가 나서 폭발 직전이라는 얘기다. 이럴 때는 반말을 하면 안 된다. “뭐 하고 있었는데?” “컴퓨터 하고 있었어요.” 잽싸게 인터넷 창을 닫아보지만, 아빠가 이미 스윽 살펴본 뒤다. “또 축구냐?”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냥 잠깐 뭐 보다가.......” 말도 다 끝나기가 무섭게 각종 물건이 날아든다. 풀, 볼펜 등 내 책상에 놓인 물건이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이런 용도로 쓰이는 물건이 아닐 텐데. “야, 인마 너는 니 엄마 약 사오라니까 피곤하다 어쩌다 하더니. 썩 나가 이놈 시끼. 주말에 니가 밥 먹은 건 니가 좀 치워야지. 엉?” 우리 아빠는 젊은 시절 아마추어 축구선수셨다고 한다. 물론 사진 한 장 없어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그래서 축구사랑이 남다르다. 그 옛날 박봉을 쪼개 VCR을 사서 월드컵을 녹화해서 봤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축덕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이에 대해 왈가왈부 안 하셨던 분이다. 엄마가 가끔 “당신 닮아 쟤가 저 모양이지.”라고 푸닥거리를 해도 아무 소리 안 하시던 분인데. 이제 단 하나 남은 아군마저 적군이 되었으니....... “야 이놈아, 아무리 축구가 좋아도 그렇지. 축구가 니 밥 먹여 주냐? 응? 내가 뭐라고 했어. 수요일에도 축구 보러 갔다 왔지?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 자 더 보든가 아니면 회사 사람들이랑 좀 술도 한잔하고 친해지려고 노력을 해야 사회생활도 좀 원만하게 하고 그러지.” 그 후에 아빠가 한 이야기는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라 더 적지 않겠다. 알고 보니 내가 축구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엄마는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오라며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고 급기야 주식시장이 좋지 않아 이번 주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아빠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모든 상황이 파악되자마자 나는 잽싸게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장으로 피신했다. ‘오늘 경기 가지 말까? 오늘도 가면 더 혼날 것 같은데.’ 하지만 경기를 보러 간다고 말 안 하고 나가도 아빠는 다 안다. 리그 일정을 이미 엑셀파일로 정리해서 책상 앞에 붙여놓으셨으니까. 코팅까지 해서.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알아서 몸을 사릴 텐데 나는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쨌든 갈 것임을. 폭풍우에도 축구를 보겠다고 우산을 세 개나 부러뜨리면서도 나섰던 내가 아닌가. 아빠도 이해해주실 거다. 어쨌든 엄마 심부름을 했고 말대꾸도 안 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믿고 집을 나섰다. 하지만 보험은 하나 들어놨지. 유니폼은 입지 않았다. 가방에 넣어놨지. 날씨가 궂어서 그런지 관중은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FA컵보다는 훨씬 나았다. 게다가 레전드의 사인회가 있지 않은가? 솔직히 오늘 경기를 못 보는 한이 있어도 나는 꼭 임중용의 사인을 받고 싶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돌려보는 영화가 있는데 그게 바로 ‘비상’이다. “나는 아직도 꿈을 꿔.” 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너무 많이 돌려봐서 외울 정도다. 그래서 나는 이미 경기 두 시간 전에 줄을 섰고 오랜 기다림 끝에 실착 유니폼에 임중용의 사인을 받았다. 그런데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다가 흙탕물에 유니폼을 떨어뜨렸다……. 아무튼, 이날 경기는 아주 재밌었다. 사실 초반에는 우리가 많이 밀렸다. 대구에 스피드가 좋은 선수들이 자꾸만 우리 진영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레골라스 남준재가 축포를 꽂아 넣으며 활시위를 당겼다. “역시 우리 레골라스는 화살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저 남자 뭐야? 크크 크크.” “또라이 인가봐.”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큰 지 다 들어버렸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그리고 아주 빠르고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후반전에는 우리 팀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진 디오고의 PK로 인유가 2-1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가 내 머리 위로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상하다. 위에 지붕이 있어서 비를 맞을 리가 없는데.’ 또 비가 오나 싶어 주변을 쳐다보니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태평했다. 잠시 뒤 다시 한 번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뒤로 옮길까?’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자리를 옮기는 사람이 없다. ‘분명히 W석 뒤쪽에 앉았는데. 뭐지?’ 궁금증에 휩싸일 무렵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치는 것이 아닌가? “네?” “저기요. 머리에.......” 당황해서 머리를 털었더니 이게 웬일. 벌레 수십 마리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지붕에 설치된 조명에 벌레들이 날아들었다가 뜨거운 온도에 데여 떨어졌던 것이다. 내 자리는 천장 조명라인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급하게 주변을 살펴봤더니 우리 줄의 사람들은 저마다 머리에 뭔가를 얹고 있었다. 매치데이 매거진, 신문 그리고 부채까지. 나만 그 사실을 모른 채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 씨 이래서 여름경기가 싫다니까. 비나 오지. 그럼 한교원이 골이라도 넣게.’ 나는 투덜거렸지만 자리는 옮기지 않았다. 또 골 장면을 놓치게 될까봐. 이 날 우리는 결국 디오고의 PK 결승골로 승리했다. 하지만 나는 기쁘지 않았다. 왜냐면 이제 이번 달에는 홈경기가 없으므로. 그리고 게다가 원정경기도 평일이거나 거리가 너무 멀어 갈 수가 없다. 작년까지는 전 경기에 출석했지만 나는 이제 회사에 매인 몸이 아닌가? 이제 남은 기간에는 가정평화에 힘써야겠다. 축구는 잊고 심부름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 하는 아들이 되어야지. ‘당. 분. 간’은. *본 내용은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최하나 UTD기자 (lastchristmas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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