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21일 인천 유나이티드 1-1 제주 유나이티드
왔다. 결국 왔다. 사실 제주도에서 축구를 볼 줄은 몰랐다. 근데 왜 갔냐고? 사실 나는 휴가를 일찍 당겨쓸 예정이었다. 바글바글 대는 인파 속에 물놀이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기에 7월 첫째 주로 날짜를 잡아 놓은 상태였다. 사실 그 즈음 장마가 예고되어있긴 했지만 어디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숙소 하나 잡아놓고 먹고 자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항공권이며 숙소를 다 예약을 해 놓은 상태였다. 3박4일의 성수기를 피한 아주 깔끔한 일정. 그런데 나는 결국 취소를 하고 말았다. 그것도 전 날에. 당연히 환불은 받지 못했다. 그리고 7월21일로 여행날짜를 바꿨다. 결국 돌려받지 못한 돈까지 포함해 나는 제주도 2박3일 일정에 50만원이라는 돈을 쓰고야 말았다. 여행 일정 중 반나절이 제주월드컵경기장이 포함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네가 축덕 아니라고? 이제 그런 말 못하겠지? 야 너 나 장가가면 축의금 50만원만 해라. 설마 우리가 서로 안 날이 얼만데. 내가 축구보다 못 한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다. 축구 때문이 아니라 아무리 죽마고우지만 50만원 부조할 생각은 원래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30년을 알고 지낸 내 친구 때문에 외롭지 않게 생겼다. 사실 우리가 알게 된 건 천석이네 엄마랑 우리 엄마가 ‘산후조리원’ 동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출산을 비슷한 시기에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동창 버금가는 관계가 된단다. 암튼 그 덕분에 태어나자마자 반강제적으로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20여년을 알고 지내다가 친구가 제주도로 대학교를 가는 바람에 떨어져 지내야 했다. “야 무슨 제주도로 대학교를 가?” 사실 이 말은 제주도를 비하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연고지도 없고 제주도에서 산적도 없는 내 친구가 제주도로 대학교를 간다는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야 제주도가 얼마나 좋은 지 알아 인마? 안 살아봤음 그런 말 하지 마.” “넌 살아봤냐? 이놈아.” “.......” 내색은 안 했지만 천석이가 비행기를 타야만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간다는 게 싫었다. 그리고 각자 먹고 살기 바빠 취직한 이후로는 거의 못 봤다. “야 제주도 오면 연락해라.” “내가 너한테 왜 연락 하냐. 우중충하게.” 하지만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날 반긴 건 새까맣게 탄 천석이었다. 우중충하게....... 햇볕이 쨍쨍해서 각오해야 한다던 천석의 말과는 다르게 구름이 잔뜩 낀 제주는 을씨년스러웠다. ‘이번에는 이겨야 하는데.’ 때는 바야흐로 작년, 제주와 비겨서 상위 스플릿에 못 간 날 나는 숭의에 있었다. 축구장에 한 번도 안 가봤다는 친구를 꼬드겨서 W석에 앉았는데 이 날 나는 경기보다 친구의 반응을 살피느라 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재밌어야 할 텐데. 그래야 다시 올 텐데.’ 하지만 그 날 두루미도 감규리도 골 맛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로 친구도 축구장에서 볼 수 없었다. 사실 축구보다 여자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 받느냐고 더 바빠서 경기결과에는 신경도 전혀 안 쓰는 것 같긴 했지만. 게다가 제주는 홈에서 승률이 높은 팀이 아닌가? 비행기타고 한 시간도 안 되서 도착한다지만 어쨌든 여름이면 그 특유의 쨍쨍한 날씨와 복잡한 일정 때문에 승률이 급속도로 높아진다는 제주 아닌가? 홈에서도 못 이겼는데. “그래, 난 휴가 온 건데 뭐. 축구 보러 온 게 아니야. 잠시 들른 것일 뿐. 제주도와서 맨 날 쇠소깍이나 사려니 숲길만 갈게 아니라 이런데도 와봐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근데 너 설명이 너무 길다고 생각 안 하냐?” 나는 천석이의 한 마디에 뜨끔했다. 암튼 우리는 두 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천석이는 월드컵경기장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게 빨리 안 가도 된다고 했지만 그건 걔 사정이고. 도착해보니 뭐 사람이 좀 없기는 해도 허허벌판은 아니더만. 갈 곳은 딱히 없었지만. 그런데 그때 축산물홍보를 한다며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 게 아닌가? 나는 표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잊은 채 무언가에 홀리듯 그 곳으로 갔다. “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래. 인마. 내가 살 테니 실컷 먹어라.” “나 밥 먹고 왔어.......” 하지만 나는 이미 천석이의 말이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축구를 보기도 전에 6인분의 고기를 먹어치웠다. ‘제주도 오길 잘했네. 축구 보러 안 왔음 어쩔 뻔 했어. 고기도 못 먹고.’ 그런데 문제는 포식을 한 뒤 나는 당연히 원정응원석을 끊으려고 하는데 천석이가 이미 일반석으로 티켓을 사버린 것이다. “야 너 왜 거기서 봐. 원정석에서 봐야지.” “야 내가 거기서 왜 보냐. 내 고향이 인천도 아닌데.” “야 그럼 니 고향이 제주냐?” “어쨌든 내 고향은 팀이 없어. 여기가 내 제 2의 고향인데 어쩌냐.” “야 그럼 따로 앉아서 봐. 원래 원정팬은 일반석에 앉는 거 아니야. 예의가 아니라고. 숭의에서 경기할 때 떡하니 상대팀 유니폼입고 일반석에 앉는 사람 있으면 얼마나 짜증나는데.” “그래....... 그럼 따로 앉아서 봐. 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그렇게 하자는데 뭐. 나는 그냥 가이드지 뭐. 2박 3일 동안 운전이나 해주고 잠잘 곳 마련해주고 축구보자면 축구 보러 오고 따로 앉자면 따로 앉고 그런 거지 뭐.” 비꼬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만 할 말이 없었다. 물론 내가 일반석에 앉으면 되는 거지만 솔직히 맘에 찔렸다. 내가 만날 캠페인으로 외쳤던 “원정팬은 원정석에.”이 아니었던가. ‘아 그냥 일반 관중석에 앉을 것이냐 아니면 원정석에 혼자 앉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이 나보다 꽤 오래 전에 먼저 했을 그 고뇌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나는 결국 천석이와 일반석에 앉았다. 파란색 유니폼도 입지 못하고. 결코 천석이네 집에서 자기로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게다가 천석이가 나를 위해 차를 렌트했고 2박3일 일정 내내 가이드해주기로 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그저 우정을 택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안절부절 못한 채로 경기를 봐야했다. 남들이 울 때 웃어야 하고 남들이 웃을 때 울어야 하는 내가 표정관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남들이 탄식할 때 속으로 끊임없이 ‘그래 골 넣어야지.’하며 주먹은 불끈 쥐어도 아무렇지 않은 척 심란한 척 앉아있어야 했다. 왜냐면 그게 예의니까. 일단 일반관중석에 앉은 이상 상대팀 유니폼을 입을 수도 응원할 수도 없다. 그게 불문율이니까. 저번에 어떤 선수가 그랬지. 누나 남자친구가 수원팬이라고. 그 선수는 서울선수였다. 그 딜레마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았다. 아무튼 이 날 나는 제주까지 50만원을 버려가며 축구를 보러 온 보람을 느꼈다. 권정혁의 원더골을 봤기 때문이다. 사실 바이시클킥, 헤더 등등 그 어떤 골도 이 골에 비할 수 없다. 85m 장거리 골이라니. 이건 중거리 슛이라고 할 수도 없다. ‘권정혁이 그냥 최고야. 오늘 이기겠구먼.’ 하지만 이 날 우리는 이기지 못했다. 감독님은 퇴장을 당했고 1-1로 비겼다. 사실 나는 판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그 보다 감독님 때문에 걱정되었다. 물론 제주관중은 매너가 좋았지만 퇴장당한 후 감독님이 착석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홈팀관중석 한가운데였다. 좀 더 앞이었나? 잘 모르겠지만 암튼 중요한 건 홈팀관중석에 앉았다는 거다. 정작 스태프나 경호원도 침착한데 나만 안절부절못하며 감독님 뒤통수만 뚫어지게 바라봐야 했다. ‘캔이라도 날아오는 건 아니겠지?’ 결국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지만 제주팬 한 가운데 앉아있는 인천감독이라니. 인천 팬으로서 씁쓸하면서도 가슴 아팠다. ‘어쨌든 승점은 땄는데 뭐. 진 것도 아니고.’ 진 것 마냥 아쉬워하는 선수들은 보며 안타까웠다. 냉혹한 스포츠라지만 어쨌든 축구는 ‘beautiful game’이라고 하지 않은가. 지지만 않음 되지. 져도 뭐 어쩌겠어. ‘그래도 우정과 팀에 대한 사랑을 모두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나는 뭐라도 해낸 냥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며 아름답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역시 제주 잘하지? 그치?” 결국 나는 천석이의 도발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2박3일 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은 채 관광한 건 비밀로 하는 걸로. *본 내용은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최하나 UTD기자 (lastchristmas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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