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0일 인천 유나이티드 2-3 FC 서울
나는 서울에 아무 감정도 없다. 절대로. 하지만 이 말을 되뇔수록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건 왜 일까? 사실 나는 원래 FC서울에게는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던 시절 서울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나보다. 이상하게도 서울과 하는 경기에는 국가대표 경기 이상으로 흥분하고야 만다.
아직도 기억나는 나의 20대 시절, 정확하게는 2008년이었다. 그 당시는 나는 한 회사에 사무보조를 하고 있었다. 일명 ‘알바’지만 나름 사무직이었다. 게다가 시급도 그 당시로는 꽤 많은 6500원이었다. 회사는 포워딩을 하는 무역회사로 서울 논현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 중에 서울. 강남에 위치한 그 회사에는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나는 그들과 대화해야 하는 점심시간이 제일 싫었다. 게다가 알바임에도 불구하고 정직원들과 함께 6000원짜리 백반을 먹어야 했다. 나는 만날 학교 앞 3500원짜리 점심만 먹었는데. 그리고 그 위축감에 입이 한 주먹이나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팀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이지? 공부 열심히 해. 나처럼 이런데서 일하지 말고. 껄껄껄.” “왜요. 전 여기 좋은 것 같은데요.” “그래? 하긴 우리 사무실 막내도 외국에서 유학하고 왔어.” “아, 그래요?” “근데 어디 살더라?” “저요? 인천이요.” “인. 천?????????????????????? 거기서 여기까지 일을 다닌단 말이야? 세상에.” “네? 생각보다 별로 안 멀어요.”
아직까지 내 입가는 미소를 머금은 상태였다는 것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안 멀기는 뭐가 안 멀어. 왔다 갔다 차비도 안 빠지겠다.” “한 시간 밖에 안 걸려요. 노원구에서 강남 오는 것보다 더 가까워요.” “에이 거짓말. 인천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어떻게 한 시간 밖에 안 걸려. 그게 말이 돼? 참.” “광역버스 9100번 타면 한 시간 밖에 안 걸려요. 저희 집이 고속도로 타기 바로 전에 있거든요.” “으이그. 그 말을 누가 믿나. 그나저나 인천에는 일자리가 있긴 해? 그래서 서울로 다니는 건가?” “아니요. 그냥 휴학하는 동안에 다니게 된 건데요.” “그래? 그냥 서울에서 살지 그래. 집값이 비싸서 안 되려나? 크크 크크.” “아니요. 인천이 고향이라 졸업하고 나서도 인천에서 살 거예요.” “그래 어디 한 번 잘 해봐. 일도 뭐가 있어야 하는 거지. 어차피 그래도 서울에 올라오게 될 걸?”
끝까지 서울까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린다는 나의 말을 믿지 않은 채 묵묵히 자기 밥으로 고개를 돌린 그 팀장의 얼굴이 참 미웠다. 인천이 어디 구석에 처박힌 줄 아는 얄미운 사람. 인천이 시골인지 아는 무식한 사람. 그것보다 일을 하려면 서울에 와야 한다고 단정 짓는 그 입이 너무 얄미웠다. 그리고 말없이 뿜어내는 나의 살기가 느껴졌는지 사무실 막내가 화제를 돌렸다.
“팀장님 새로 아이폰 바꾸셨나봐요?” “내 돈 주고 바꾼 건 아니야. 크크크.” “아유, 더 잘되었네요. 야, 좋다. 좋네.”
사무실 막내의 아부가 끝나기 무섭게 사무실 경리와 대리까지 붙어서 팀장님의 ‘공. 짜 아. 이. 폰’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속이 메스꺼워 급한 일을 까먹고 있었다고 둘러대고 먼저 나왔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서울과의 경기에서 유독 흥분하고 성마르게 된 것이. 특히나 홈경기는 더 하다. 이 날은 나만의 작은 전쟁이다. 평소에는 벌써 챙겼을 치맥은 절대 가져가서는 안 된다. 골이라도 먹으면 닭 뼈를 던지거나 맥주잔을 구겨서 민폐를 끼칠지 모른다. 그냥 정말 딱 맨손을 가서 90분 동안 미간의 주름을 평소보다 2배는 더 만들어 인상 쓰는 게 전부다. 소리도 지르지 않는다.
“어이, 무슨 일 있어? 아님 내가 카드 열장 해오라고 해서 짜증이 났나?” “네? 아닙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경기 전 날부터 초긴장상태에 돌입한 나는 점심도 저녁도 거른 채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 채로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더니 나에게 과다한 영업을 시킨 과장님이 찔리셨는지 농 같지 않은 농을 건넨다. 아무리 웃으며 대답하려 해도 왜 어금니에 힘이 들어가는 걸까?
그 날 밤, 나는 다음 날 먹지 못할 맥주를 잔뜩 마시고 잠이 들었다. 저번처럼 메뚜기나 여치 떼에 쫒기는 꿈을 꾸고 싶지 않아서. 그러면 아마 나는 경기 보기도 전에 졸도할거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정작 경기를 뛰는 건 내가 아니지만 나느 결연한 마음으로 머리를 더 짧게 깎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가다 수봉공원근처에서 내려 도원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마음을 수양할 겸 내 몸을 극한의 경지로 내 몰을 겸. 하지만 내 선택은 틀렸다. 극한의 경지와 수양과는 거리가 멀게 더 찌그러진 인상에 땀까지 비 오듯 흘려내려 내 주변에 아무도 앉지 않을 것 같은 비주얼이 완성되었다.
어렵게 도착한 숭의에는 넘실거리는 파란 바다위에 빨간 해가 솟아 있었다. 역시 서울은 전철로 연결되는 가까운 곳이라는 것. 그리고 인천은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곳이 아닌 교통이 편리한 광역시라는 게 다시 한 번 느껴졌다.
이 날 경기는 골을 주고받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한골 먹으면 한골 따라잡고 다시 한골을 내주면 다시 한골을 만회하고.
‘야, 데얀 잘한다. 역시 인천을 잊지 못했어.’
K리그의 수비수의 공공의 적으로 등극한 그는 올해 들어 더욱 더 철저하게 분석되고 파헤쳐져 플레이가 작년 같지 않았다. 오늘도 다를 리가 없다. 게다가 인천의 수비는 집요함에 짠 맛까지 더해져 한 번 숭의를 방문한 공격수들은 진이 빠져 돌아가고야 만다.
‘이대로만 계속 한다면 우리가 버저비터를 넣고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겠지.’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중거리 슛을 철저하게 봉쇄해줄 마초맨 김남일과 미추홀 파이터 이윤표가 없다는 걸. 결국 우리는 마지막에 데얀에게 골을 허용하며 웃지 못했다. 다른 경기였다면 벌써 여기저기 거친 말이 터져 나왔을 숭의극장이 고요해졌다. 이런 적막감은 밤바다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다행히 생각보다 나는 크게 분노하지도 길길이 날 뛰지도 않은 채 침착하게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인유를 나와 동일시하지 말 것. 축구와 사적인 감정을 연결시키지 말 것. 스마트폰 배경화면에 적혀있는 나의 신조를 그대로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인유가 지던 말 던.
하지만 월요일 아침,
“해왔어? 카드?” “아니요. 그건 개나 주라고 하세요.” “뭐?”
그리고 나는 새롭게 시작하는 한 주를 팀장님의 방에 끌려가 각종 훈계를 듣는 걸로 시작했다. 더위를 먹어서 그랬다고. 말이 잘 못 튀어나온 거라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말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진실은 저 멀리에.
*본 내용은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 전혀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최하나 UTD기자 (lastchristmas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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