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05 인천 유나이티드 0-1 수원 삼성 블루윙즈 풋살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랬다. 3월에 나는 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축구를 하다 인대가 늘어났었다. 그리고 절뚝이는 발로 상암까지 가서 축구를 봤고 다시는 인유 경기 전 날에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런데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수원 원정 전 날, 나는 풋살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태클을 하다 엎어져 망신당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역시, 나도 이제 베테랑이군.”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노곤한 몸을 이끌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가 너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이상하다. 왜 이러지.’
이불을 들추어 내 발목을 살펴봤지만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상체를 일으키고 발을 바닥에 딛자마자 느껴지는 고통. 나는 그대로 침대위로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원정. 수원 가야하는데.’
이 생각을 하니 등골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간신히 몸을 다시 일으켜 세웠는데 발이 30cm 이상 벌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수원에 가면 얼마나 걸릴까?’
다행히 걷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문제는 ‘보폭’이었다. 게다가 원정버스도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 지하철의 수많은 계단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쩌지. 어쩌지. 이번엔 꼭 가야하는데.”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 그랬다. 인천 유나이티드 다큐멘터리 비상. 거기 초반에 라커룸에 누워있던 라돈치치가 갑자기 떠올랐다. 라돈치치는 발목에 아이싱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걸로 어떻게 해보자.”
내가 다친 부위는 발목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부엌으로 가 냉동실의 얼음판을 뒤집었는데 얼음이 봉지가 아닌 바닥으로 쏟아지는 게 아닌가. 소리는 또 어찌나 큰 지. 그런데 얼음이 바닥에 닿자마자 녹아버린다. 분명 5월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녹을 정도로 더운 건 아닐 텐데. 나는 어기적거리며 거실로 가 개별난방 스위치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한 겨울에도 세게 안트는 보일러가 55에 1로 맞춰져 있었다. 재수가 없으려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나는 결국 반 쯤 녹아버린 얼음을 봉지에 담아 다리에 올려놓았다. 이건 내가 생각한 아이싱이 아닌데. 다큐멘터리 속 라돈치치의 발목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결국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물론 반 쯤 녹은 아이싱을 하고 수많은 사람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카톡을 남긴 채.
이튿날 아침,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스무 개가 넘는 카톡이 도착해 있었다. 어젯밤 나는 도저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아 지인이란 지인은 모두 동원해 카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원 원정 날이 어.린. 이. 날 이라는 걸 까먹었다는 것이었다.
얄미운 지인의 대부분은 나와 달리 이미 결혼해 아이가 있는 몸들 아닌가? 거절의 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더 쓰라리게 느껴졌다.
“똑똑. 아들?”
침대에 간신히 걸터앉아 망연자실하게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가 형식적인 노크를 하더니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문을 벌컥 연다.
“왜요?”
“뭔 일 있나?”
“없는데.”
“근데 왜 똥 씹은 표정인데?”
“아니야.”
“왜.”
“아니라고.”
“목소리 톤 안 내리나.”
엄마는 나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귀신같이 캐치해 내고는 오히려 성을 낸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작전후퇴를 해야 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나 오늘 어디 가야하는데. 차편이 마땅치 않아서.”
“어디 가는데?”
“수원.”
“또 축구 보러 가냐?”
“아냐, 어린이 날이잖아.”
“어린이날에 축구 보게? 넌 참 내 자식이지만 대단하다. 비가와도 축구 보러 가. 눈이 와도 축구 보러가. 아니,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 내다 버리라고 하면 있는 대로 인상 찌푸려가면서 피곤해요 어쩌고저쩌고 하는 놈이 어쩜 이럴까. 내 자식이지만 갖다 버리고 싶다.”
“........”
엄마 말에 도저히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는 벌써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한 됫박은 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논리가 아니다. 엄마가 짜증을 냈다는 것. 그리고 그 짜증을 나의 축구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거다. 나는 이제 입을 다물어야 한다.
“너 누나한테 전화 좀 해봐.”
“누나?”
“반찬통 저번에 가져갔는데 갖다 준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되네. 빨리 전화 좀 해봐.”
“알았어.”
엄마가 나가자마자 나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띠용띠용.”
역시 누나답게 컬러링이 아주 우렁차다. 그리고 한 번에 받는 법이 없지.
“응?”
“누나 자?”
“응. 왜?”
“엄마가 반찬통 갖고 오래.”
“반찬통? 안 씻어놨는데.”
“빨리 달래. 엄마 짜증났어.”
“그래? 언제 달래?”
“언제긴 언제야 당장이지.”
“나 안 되는데?”
“오늘 촬영해?”
“아니, 장소 헌팅 하러 가려고.”
“어디 가는데?”
“수원.”
‘수원. 수원. 수원. 수원.’
내 머릿속에서 한 단어가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나는 드디어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그게 누나라는 게 좀 아쉽지만.
“누나 같이 가.”
“너는 왜?”
“아니 좀.”
“축구 보러가지?”
“누가 그렇대?”
“뻔하지. 몇 신데?”
“두시 경긴데.”
“그럼 열두시에 데리러 갈게.”
“응?”
이렇게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다. 뭐지? 뭔 일이지?
“누나도 축구 보게?”
“아니, 내가 너처럼 한가하냐? 넌 축구 봐. 그 사이 나는 근방 좀 둘러보고.”
“알았어. 이따 봐.”
대답 없이 통화가 끊어졌지만 나는 안다. 오늘 나는 무사히 수원에 갈 수 있다는 걸.
전북 전 이후로 만난 누이의 얼굴이 더 까칠해져 있었다. 운전을 하며 수 없이 기침을 해댔다.
“어디 아파?”
“감기.”
이럴 수가. 우리 누이가 감기에 걸리다니. 우리 누이는 어릴 적 몸이 약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해마다 비싼 보약을 먹였고 그 결과 우리 누나는 건장한 남정네 뺨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기운은 어찌나 센 지 돌려차기에 한 데 맞으면 꼼짝없이 바짝 엎어져야 한다.
“괜찮아?”
“괜찮겠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했지만 역시 대답은 씩씩했다. 우리 누나는 걱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다. 요즘 트렌드가 쿨 한 여자라며? 우리 누나는 벌써 그 트렌드를 십 몇 년 전부터 이끌어왔던 사람이다.
그리고 도착한 수원 월드컵 경기장. 나는 결국 탈 없이 빅버드에 입성했다. 누나에게 고마움을 담아 손을 흔들어주려는데 이미 차는 저 멀리 떠나고 없었다.
이제 빅버드까지 걸어가는 일만이 남았다. 멀쩡할 때라면 10분 안에 도착할 거리지만 나는 안다. 이 보폭으로는 30분쯤 걸린다는 걸. 어차피 경기는 1시간 뒤니 시간은 넉넉하다. 오랜만에 여유를 부리며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는데 소풍 나온 가족들이 참 많았다. 그림을 그리고 미끄럼틀을 타는 어린이들의 표정은 참 해맑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기렴. 크면 나처럼 된다.’
아무리 내가 어른이 되었어도 나도 저런 표정을 지을 때가 있긴 있을 거다. 문제는 그게 인유가 이기고 있는 경기를 볼 때 뿐 이라는 거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솔직히 나는 인유의 승리를 예상했다.
‘우리 팀 분위기도 좋고. 어웨이지만 파란색 천지고.’
하지만 어디 축구가 내 뜻대로 된 적이 있던가? 그리고 축구공은 참 둥글었다. 이 날 90분간의 경기는 참 많이 아쉬웠다. 수원이 강팀이기는 하지만 골이라도 주고받고 졌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진건 어린이날이라 그런 거야.’
나는 어른이니까.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니다. 고로 인유의 날도 아니다. 나는 억지스러운 삼단논법을 들먹이며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경기장을 간신히 빠져나오는데 누나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따 내려준 곳에서 봐.”
경기는 끝났건만 우리 누나의 휴대폰은 몇 번의 신호음이 가더니 아예 꺼져버렸다. 나는 주차장에 걸터앉아 흙먼지를 마시며 누나의 붕붕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 결국 나는 포기했다. 역시 어린이날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택시-시외버스-택시의 삼단 콤보로 홀쭉해진 지갑과 함께 이제는 20cm밖에 벌어지지 않는 다리를 장착한 채 나는 그 날 네 시간쯤 걸려 집에 도착했다.
‘다시는 어린이날에 외출하나 봐라. 아니 어린이날에 축구 보나 봐라.’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또 축구를 보러 갈 것이다. 어린이날에 우박이 쏟아진다 해도.
*본 기사는 팬의 가상일기로 사실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글=최하나 UTD기자 (lastchristmas86@hanmail.net)
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