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자존심 셀틱을 떠나며...
처음 영국이라는 낮선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오며 많은 기대와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축구의 종주국의 선진축구를 셀틱 팀에 들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행운의 기대와 언어, 음식, 문화 그리고 환경 등의 변화에 따른 두려움으로 시작하는 축구 유학이었습니다. 인천 축구팀을 벗어나고, 가족과 헤어져 일 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적지 않은 나이에 선택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가슴 한편으로 벅차오르는 감정과 한편으로는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으로 16시간의 비행시간이 금방 지나고 영국에 도착 하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글라스고우’ 라는 도시는 소문처럼, 한국의 장마철을 연상할 만큼의 비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셀틱 팀과의 첫 만남은 어색함과 철저히 무시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셀틱의 120년 역사 처음으로 이방인 지도자였던 만큼, 이곳의 배탁적인 분위기는 저를 더욱 당혹케 했었습니다. 특히 언어의 한계와 축구 변방에서 온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이곳 사람들의 냉대를 참아야 했었습니다. 코칭스텝들 훈련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사진기와 캠코더 사용까지 제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기대를 잊지 않고, 최대한 많이 보고 가야한다는 책임감으로 자존심을 버려가며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며 그들의 문화에 흡수되려 노력 했습니다. 냉대감을 보이는 그들에게 동료애를 심어주기 위해 비를 맞으며 공을 줍고, 훈련에 필요한 도구를 같이 나르는 등 궂은일들도 마다하지 않고 같이 하였습니다.(이곳에서는 선수들이 훈련에 집중할수 있도록 궂은일들은 스텝에서 일괄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어 가끔씩 실수를 하긴 했지만, 이런 행동들이 서서히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어 가는 계기가 됐고, 마침내 그들 또한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스텝 친선 축구 경기에서 함께 몸을 부딪치고, 땀을 흘리는 축구라는 문화가 언어를 능가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축구 문화를 통해 신뢰와 믿음을 구축 할 수 있었고 , 처음의 냉대함을 떨쳐버리고 그들의 제한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후 셀틱의 많은 자료들과 인간관계가 저의 축구 지도자 인생의 한 획을 긋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축구본고장의 분위기와 문화에 대해 익히고 있는 동안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 뿐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배우기 위해 여러 경기를 찾아 장거리 여정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술 및 선수 교체타이밍, 첼시의 강한 미드필드진영에서의 프레싱 하는 방법 및 선수들에게 피드백을 제공하는 타이밍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경기는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만큼, 박지성의 올 시즌 첫 골을 눈앞에서 본 경기에 대한 비용을 엄청나게 지불해야 했었습니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채, 길을 헤매다 셀틱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늦은 밤이라 기차표도 구하지 못하고, 겨우 심야 버스를 새치기해서 겨우 좌석을 구했지만, 옆 좌석의 덩치가 산만한 흑인 아줌마 덕분에 비좁은 버스 안에서의 9시간동안의 악몽에 시달리다 겨우 벗어난 것이 새벽 7시였고 바로 셀틱 연습장으로 출근....
또 맨유의 홈경기와 리버풀의 홈경기 후의 밤늦은 야간 버스를 기다릴때, 취객들의 거친 행위로 많은 당혹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 사건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모든 배움이 값비싼 대가 없이 결과는 얻을수 없다’라는 세상의 정의를 새삼 느꼈고, 실수와 실패를 극복하고 자신의 최대 역량을 발휘하는 ‘최고의 도구’ 이자 ‘마음가짐’ 이 ‘최선’이라는 것을 느꼈고,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 리그’라 불리는 EPL(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과 SPL(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을 간단하게 정의 하면, 전반적으로 미드필드진에 최대한 많은 선수를 배치하고, 공격때는 수비수의 상대진영을 깊숙이 파고드는 오버래핑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또 수비때 공격수들의 전방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이곳의 트렌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제 플레이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포지션을 막론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전방의 공간 침투로 항상 손에 땀을 쥐게 하고, 한 순간도 경기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곳 축구의 매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기장의 분위기가 점잖은 관중들도 광란의 분위기로 몰아가는 이곳의 특색인 것 같습니다.
관중들은 무의미한 횡 패스와 빽 패스에는 홈 팀인데도 불구하고 야유를 보내고, 이러한 분위기가 이곳의 공격 축구를 발전시키는 한 요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펍 문화 역시 축구로 집중되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축구 경기 중계의 라이센스를 사고, 간단한 맥주와 함께 자연스럽게 모이는 서포터들에게 장소 제공함으로써 축구에 빠져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미디어 매체와 축구 협회의 관계는 비즈니스적 사고 방식으로 접근하기에 그 효과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구단 역시 상품화를 통해 구단의 심벌, 유니폼을 이미지화, 트렌드화 시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품화가 판매 효과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축구 경기장에서만의 유니폼이 아니라, 외출복으로써의 어색함이 없는 이곳의 상품화는 경제 효과를 창출시키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언론 매체들을 통해 이런 말들을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직접 느낀다는 것은 전율을 느낄 정도의 경험 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들과 이곳의 시간을 정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너무나 큰 선물인 배움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그 배움을 인천 축구 현장에서 접목하기 위해 더욱 노력 할 것을 다짐합니다. 제가 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안종복 사장님을 비롯하여 구단 스텝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떠나는 이방인을 위해 12월 마지막 홈경기에서 식구라는 의미로 셀틱 유니폼에 이름을 새겨 주었던 셀틱 감독 고든 스트라쳔, 내년에는 챔피온스 리그 4강진출을 기원 합니다. 특히 이곳 글라스고우의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신 고구려 한인 축구회 회원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셀틱의 팬들보다 더욱 가슴이 뜨거운 인천 유나이티드 팬 여러분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기대감이 이곳에 처음 올때의 설레임만큼 크게 다가옵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인천에 돌아가서 뵙겠습니다.
셀틱의 축구 문화가 인천까지 전달되기를 기대하며.... 김 시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