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오늘까지, 타구단들끼리의 경기에서도 다득점이 많이 나왔는데, 휴식기를 가지며 경기감이 떨어지거나 조직력이 와해된 모습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팀이 그런 면을 노출해버렸네요.
일단 성남은 3라운드에 우리가 대파한 그 팀이 아니었습니다. 초반에 그 난조를 겪으면서도 13라운드까지 우리팀에 이어 실점 2위의 팀이었습니다. 리그 중반 이후부터 따져보면 오히려 우리보다도 더 수비가 강한팀으로 변모했다는 거죠.
리그 최고의 수비력을 가진 두팀이 붙는다면, 상식적인 경기양상은 무승부나 한골승부. 어느팀이 먼저 실수를 하고 자기볼을 잘 간수하느냐의 싸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남이 이런 경기양상을 더 잘 준비하고, 효과적으로 치뤄냈고요.
인천이 카운터의 팀이고, 수비를 갖춰놓고 잠그는 팀에 비교적 약한거야 이미 알고있는 사실인데, 수비를 특기로 하는 팀끼리 겨루면서, 수비승부에서 졌다는데 이미 답이 나왔다고 봅니다. 다만 성남이 기똥차게 잘했다기 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무너진 감이 커서 아쉽습니다.
인천은 전반기에도 종종 노출했던 왼쪽라인의 약점이 드러났다고 봅니다. 콕 찍어 말하면 김창훈선수죠...
준수한 왼발킥이 있지만, 오버래핑 했다가 들어가는 속도와 맨마킹에 약점을 종종 드러냈는데요. 한두 경기에서 약점을 노출했지만, 전반적인 수비 조직력이 워낙 좋았기에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죠.
하지만 오늘은 그런 김창훈 선수의 약점이 커버되지 못한 날이었습니다. 오늘 두번째 약점은 저는 구본상 선수의 닌자모드가 아닌가 싶은데, 수비커버부터 공격전개까지 양면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김창훈 선수가 뚫린 지역을 미들에서 커버해주지 못하면서 이윤표 선수가 경기내내 끌려나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중앙공간으로 크로스가 쑥쑥 들어갔죠.
물론 성남 공격진의 골 결정력이 엄청 좋긴 했습니다. 김동섭 선수는 신장도 좋고, 최근 경기력이 원톱으로서 정말 좋더군요. 요즘 토종 공격수중에서 원톱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선수가 많지 않은데, 잘하더라구요.
성남도 선취골에 신났는지 빈틈을 보였고, 우리가 일찌감치 동점을 만든데까지는 승부의 여지가 남아있었다고 봅니다. 거기서부터라도 다시 재정비해 나갔으면 좋았을텐데, 성남은 정신을 차린 반면, 인천은 약점을 드러낸채로 계속 경기가 이어졌습니다. 다시 리드를 당한 순간부터는 성남이 확실히 잠그기 시작했는데,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연달아 추가골을 먹혔고요.
하지만 그 이후부터의 비효율적인 추격전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인천은 한동안 두골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적이 없습니다. 웬만해선 수비조직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고, 무리하게 라인을 끌어올려 닥공을 펼치거나 하진 않는다는거죠. 리드를 뺏겨도 차근차근 공략해서 결국 역전내지 동점을 끌어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수비가 불안한 상태에서도,안정적인 경기력보다는 공격을 감행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시즌초반의 대전전에서는 대전의 카운터능력이 워낙 부족했기에, 비록 패하긴 했지만 가둬놓고 패는 경기를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남은 대전보다 훨씬 수비와 반격이 좋은 팀이었고, 인천의 닥공은 비효율적이고 무기력하게 느껴졌습니다.
공격진에 볼이 대충대충 투입된다는 느낌이었고, 노린 부분이긴 했지만 공수간격이 쫙쫙 벌어졌죠. 마치 국가대표팀의 지난 3연전을 보는것처럼 상대가 뻔히 대비하고 있는 뻥축을 한다고나 할까요.
인천은 미들을 생략하고 공격진에게 빠로 뻥축을 올려주기에 적당한 공격진을 갖추진 못했다고 봅니다. 설기현 선수 외에는 피지컬적으로 강인한 선수가 부족하고, 크랙이라 할만큼의 탁월한 외국인선수도 없고요. 전북이나 수원, 서울같은팀이 여차하면 올려붙이고 닥공하는 패턴을 따라하는건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요. (오늘 수원 전북전같은 경기는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인천은 다소 무리한 뻥축을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남이 워낙 내려앉아서 다른수가 없기도 했고, 교체선수 구성상 별다른 대안도 없긴 했습니다. 애초에 두점차 이상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인천에게 쓸만한 카드가 없었다고 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리하고 비효율적인 닥공보다는 착실하게 팀컬러를 회복하며 한골이라도 따라잡는게 다음경기를 위해서라도 필요하진 않았나 싶습니다.
작년 전반기의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도 이정도의 대패는 나온적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충격적이라고 할수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는 또한번 충분히 약으로 삼을만한 패배가 될수 있다고 봅니다. 시즌초에도 신나게 2연승한 후에 대전에게 한방먹고 정신차린것처럼, 전반기를 3위로 잘 마무리하고 쉬면서 조금은 느슨해진 팀을 정신차리게 해줄 패배로 삼으면 될것같아요. 새삼 새로운 약점이 드러난것도 아니고, 그동안 그 약점을 해결하지 못해왔던 것도 아니니까요.
남준재선수의 리그 첫골이 또 패배로 빛을 바래서 아쉽네요. 포항전에 만반의 대비로, 팀이 빨리 대패의 충격을 잊어버렸으면 합니다.